[김소봉 칼럼] 원효의 화쟁사상이 돋보이는 세상

  • 입력 2012.06.26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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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도 시끄러운 세상이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百家爭鳴)에 비견될 만큼 논리는 안개비처럼 세상을 감싸고 있으나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 생명을 살리지 못하는 결과의 빈곤은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더 삭막하게 만들고 있다.

내 말과 행동은 옳고 남의 말과 행동은 그르다고만 주장하면 결국은 고성이 오가고 주먹이 오가고 상대적인 감정과 증오는 곧 살인의 추억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화합과 평화는 미물과 축생도 원하거늘 영장류인 사람들이 바라지 않으랴마는 더 없는 의식주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대립과 격돌이 남발하다 못해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려는 가치관의 타락 그 자체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단절하게 만든다.

우리 시대에는 과제만 있고 정답은 없다. 그러나 정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해와 배려, 상대에 대한 존중이 서로의 주장 속에서 사라진 것이 정답을 매몰하고 오답들끼리의 충돌로 이어져 세상은 격투기나 이전투구처럼 만신창이고 거기에서 비롯된 논쟁과 이념, 종교 간의 갈등으로 빚어진 먼지는 백신이 없는 최악의 불치병과 공해를 유발하고 있다.

7세기 시대를 살다간 원효대사는 요석궁 공주와 인연을 맺어 한글의 창시자인 이두를 만든 설총(薛聰)을 낳고 후일 제도권에 안주한 승가를 떠나 머리를 기르고 스스로 소성거사라 칭하며 걸인을 비롯한 가장 하층민인 서민들과 여생을 보낸 기행과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서 해골에 든 물을 마시고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라는 오도송(悟道頌)을 남긴 것으로만 기억하나 원효대사의 일생은 순탄한 생이 아니라 천 길 낭떠러지를 간신히 지나가는 수레나 움푹 파인 자갈길을 달리는 천리마처럼 지치고 힘든 삶을 살았던 분이다.

개혁주의자로 새로운 사상에 목말랐던 대사는 당나라로 가는 길목인 요동에서 고구려군에게 붙잡혀 간첩으로 오인 받아 생사를 오가는 위기도 겪었으며 고승으로 국가에서 베푸는 백고좌회(百高座會)에 초청받았으나 대사를 참소하는 조정중신들과 시기하는 승려들의 반대로 참석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강론을 위한 원고를 도둑맞기도 했으며 파격적인 그의 언행에 따른 송사(訟事)가 끊임없이 이어져 관청에 피의자의 신분으로 자주 서기도 했다. 그러나 원효는 그런 분열과 갈등과 증오를 되레 포용하는 화쟁사상을 택했고 평화를 갈구하는 염원을 십문화쟁론(十文化爭論)에 담아 후세에 전했다.

푸른색과 쪽 풀은 본래 같은 색이고 물과 어름은 같은데도 서로 다르다는 주장을 펼쳐 학자와 종교인 및 위정자들끼리 갈등을 부추겨 백성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드는 것을 경계한 대사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은 정확했으나 그분의 저서는 현재 겨우 목판 석장만 남아 있을 뿐이다.
토론과 언쟁에는 말이 문제다. 말이란 본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 답이 아니다. 서로 말꼬리만 붙들고 있다면 진정한 토론문화와 대의정치는 실종되고 만다. 요즘 종북이니 통일이니 하는 국가적 좌표에도 피아간의 논리와 저격만 난무할 뿐 통일에 대한 국민 대다수가 긍정하고 인정하는 정답은 보이지 않는다. 즉, 정치인들의 도구로만 이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원효의 화쟁론에는 긍정과 부정이 따로 없다. 논리와 논쟁이란 무엇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므로 상대의 견해를 귀담아 듣는다면 의견접근이 어려울 게 없는 화합으로 연결돼 국리민복에 기여하고 학문적 가치상승에도 도움이 된다고 대사는 또 다른 저서인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도 유독 화합을 강조하고 있는데 불교의 원조이신 부처님의 화합승(和合僧)을 강조한 대목과도 일치한다.

근자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며 상대의 말꼬리만 붙드는 기 싸움만 가지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정치지도자들에게 십문화쟁론이나 기신론 같은 화쟁사상이 담긴 원효대사의 저서를 한 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서민복지와 지역적 화합을 추구하는 강력한 의지와 통일에 대한 정확한 정답을 지니지 못한 인물은 국가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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