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최진갑 부산고등법원장이 그리운 이유

  • 입력 2012.07.11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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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상징을 저울로 제정한 것은 공평을 뜻하는 것이다. 저울이 터럭 몇 개만 차이가 나도 한편으로 기우는 것처럼 저울은 법원만의 상징이 아니라 법관들의 양심 그 자체며 성서나 경전 같은 것이다. 근래 대법관후보에 오른 계신교도인 김신 대법관 후보자(전 울산지방법원장)를 두고 개신교와 불교계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기독교계 신문인 국민일보와 종교자유정책연구원(종자연) 및 불교계의 언론들 역시 일촉즉발의 전투전야처럼 신경전을 벌이는 것을 보며 별로 유쾌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최재천 국회의원(서울 성동 갑)이 7월 8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사법재판사상 유례가 없을, 민사법정에서의 원고와 피의자에게 강제로 기도를 하게해 ‘아멘!’을 하도록 강요했고 교회 관련 형사 사건은 유별시리 화해를 통해 사건 해결을 시도했다. 이는 명백한 종교편향이고, 법관으로서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종교 편향적 행보는 서울시장인 이명박 장로와 맥락을 함께하는 성시화 운동으로 이어졌고 당시 부산시내 곳곳에는 ‘부산 시내에 있는 사찰은 모두 무너져 내려라!’라는 저주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처럼 “‘국가와 도시 전체를 기독교화 하겠다’는 성시화 운동에는 부산기독교인기관장회 회장이었던 김 후보자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기억되며 김 후보자의 추천 과정에서 이런 기독교적 요소가 작용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최 의원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필자는 2006년 최진갑 창원지방법원장(현 부산지방고등법원장)으로부터 국민들과 격리돼 온 법원을 국민의 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열린 법원’으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창원대 김인숙 교수와 박홍일 KBS보도국장, 지금은 변호사지만 당시 황용경 수석부장판사, 정문성 판사, 유희선 판사, 김용찬 판사 그리고 법원의 중진 사무국간부 몇 분이 함께 참여해 10인 위원회를 가동했고 전국 최초로 창원지방법원을 열린 법원으로 환골탈태시키는 작업에 몇 년 동안 참여한 적이 있었다.

판사가 아닌 칼럼니스트인 필자는 비판자의 입장에서 회의 때마다 여과 없이 법원과 법관들에 대한 사회의 볼멘소리들을 대신 내뱉고 질책하고 때론 리포트로 작성해 제출했지만 필자의 쓴 소리는 글자 한자의 자구 삭제도 없이 소책자로 만들어져 대법원을 비롯한 전국 법원에 배포됐다. 이처럼 두터운 사법부의 벽을 허물게 한 동력은 당시 최진갑 법원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최 원장이 부산으로 영전한 뒤에 부임한 유승정 지법원장 역시 시대적 소명이란 각오로 10인 위원회를 격려하고 힘을 실어준데 대해 감사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최 원장과 전화안부를 나누며 당시 열린 법원의 첫 문을 여는 어려움에 대한 소회를 표하며 서로 감회에 젖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근래 들어 부쩍 는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경시와 불만들을 지켜볼 때마다 “사법부는 권력이 아니라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거듭나야 한다.”는 최진갑 원장의 비장한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맴돈다. 법관은 정치인이나 성직자가 아니다. 정당과 신앙에 대한 선택은 자유지만 법관은 법관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기에서 일탈하면 안 된다. 그러나 김신 대법관 후보자는 대법관이 되기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데 최재천 의원과 필자의 생각은 동일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 형전육조편에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청송(聽訟: 송사)은 공평해야하고 신독(愼獨)을 좌우명으로 삼도록 당부했다. 신독이란 인과관계와 물욕에 빠지지 않는 법관으로서의 수양과 실천덕목이다.

오래 되지 않은 어느 날, 국가원수가 조찬기도회에서 홀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장면은 감동이 아니라 한 편의 개콘(개그콘서트)이었다는 국민적 비난(?)을 상기하며 왜 최진갑 법원장 같은 분이 대법원판사 물망에 오르지 못하는지 그게 불만이다. 대법원은 교회가 아니다. 김신 대법관 후보자가 은퇴 후 갈 곳은 목회자의 길이지 대법관이 돼선 안 된다는 이유는 이처럼 자명하다. 그래선지 대법관 후보자가 거론 될 때마다 매번 명단에서 빠진 최진갑 부산지방고등법원장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달랠 길이 없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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