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국민의 여론에 눈높이를 맞춰야지

  • 입력 2012.08.03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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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인가? 필자가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경남민언련)이사로 재직할 때이니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이다. 그 해 10월 23 밤 7시. 창원대학교 사회과학관 22호관 105호 강의실에서 해마다 정례화 된 ‘경남민언련’에서 주최하는 시민언론학교 강의가 있었다. 당해 시민언론학교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토론을 통한 맞장 대결을 시도해보자는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준비됐다.

강사는 진보 쪽에서 가장 기피하는 인물인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이자 칼럼니스트인 조갑제씨였다. 그 전 해에 진보파의 논객인 진중권 중앙대 교수 겸 시사평론가를 초빙했을 때 황우석 교수를 비판했다고 멀리 광주에서까지 몰려온 수십 명의 자칭 극우보수단체라는 사람들이 진 교수를 4시간이나 감금한 사례가 있었고 경찰 1개 중대까지 출동한 사례가 있었는지라 이사인 필자를 비롯한 집행부는 약간은 긴장돼 있었다.

역시 조갑제씨는 우파의 논객답게 철저한 김대중 및 노무현 정권과 통일론에 대한 퍼주기 식 비판으로 일관했으며 북한은 2300만명이 사는 교도소일 뿐 국가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한 사이비 종교집단이라고 꼬집었다.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 김정일 교를 추종하는 맹목적 우상숭배 단체라는 것이다. 또한 6·25전쟁을 비롯해 그들이 살상하고 숙청한 민중들의 숫자는 700만명을 상회하며 현 지구상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아우슈비츠감옥이라고 비난했다.

그날 강의실에는 평양을 수 차례 다녀온 극우진보논객과 극우진보시민단체들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계란을 던지거나 삿대질을 하고 고성을 질러 강의를 방해하는 방청객들은 없었다. 오히려 진지한 질문과 답변을 통해 서로의 인식을 교환하려는 건전한 보수와 진보의 토론장이었다.
민주주의의 골간은 적대적인 돌팔매질이나 억지 논리로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니라 자유토론이다. 진보와 보수는 견해의 차이일 뿐이며 사상과 자유가 궤도를 같이 할 때 국민의 삶과 인권은 상승한다. 조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군대는 인생을 썩히는 곳이며 북방한계선인 NLL은 영토선이 아니라 미국에 의해 강제로 그어진 일방적 통제선이란 말은 북한이 주장하는 것과 너무도 일치하며 영토사수를 위한 국민과 젊은이들을 우롱하고 매도하는 짓이라고 신랄하게 비꼬았다.
2시간여의 강의가 끝나자 참석한 진보논객들도 노(老) 논객의 열변과 확고한 의지가 담긴 개인적 신념과 사상적 발언에 대해 기립박수를 보냈으며 강연장을 떠나는 조 선생을 환송했다. 걸핏하면 진보다 보수다 외치며 피투성이 난장판이 된 시위 현장과는 너무 다른 신선하고 충격적인 토론문화가 정착되는 순간이었다.

자유민주주의란 자유롭게 사는 것을 말하지만 피아간에 자유로운 개인의 의사표시나 견해를 존중하는 것이다. 오히려 논리와 토론이라기보다는 사적 개인감정과 네거티브식 이전투구들은 국민들에게 공감대는 커녕 사고의 질을 떨어뜨린다. 보수나 진보진영이 내세우는 논리와 논쟁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허용되는 표현의 자유에 허용되는 발언이지만 격돌하는 내용 속에는 주인인 국민정서에 대한 배려와 국가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염두에 두지 않은 이데올로기의 충돌은 말짱한 배를 난파시키는 위험한 발상들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민주국가에서 국가건 광역이건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는 소신을 탐욕으로 몰아붙여선 안된다. 또한 분단국가이니 박근혜 의원 같은 여성정치인은 국정을 맡기기엔 약하게 보여서 안 되고, 군대경력이 없는 사람은 안 되고, 정치를 해보지 않은 안철수 교수 같은 학자는 안 되고, 호남이나 영남사람은 안 되고, 진보나 보수는 안 된다는 논리 역시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키는 짓이다.
선출직인 별정직 공무원의 선택은 국민이나 지역민이 하는 것이지 여론몰이나 특정 미디어매체나 정당이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질 좋은 목재나 나무를 보면서 생각하는 차이는 다르게 나타난다. 목수는 집을, 어부는 고깃배를, 예술가는 조각품으로, 당장 저녁 땔감이 없는 산골의 노인은 장작으로 사용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 생각이 정답이고 오답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오답이라면 모두가 오답이고 모두가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맹인모상(盲人摸象)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시각장애인들을 모아 놓고 코끼리를 만지고 난 다음 소견을 말하라고 한다면 코끼리 전체를 볼 수 없는 장애우들의 대답이 각각이 듯 사람과 세상을 보는 견해 역시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근래에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자들끼리 국민 앞에서 하는 토론은 토론이 아니라 상호비방이나 흑색선전에 가깝다.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은 국정지도자의 애국애족을 바탕에 둔 국정철학과 행동하는 양심이지 매토도어나 사보타주가 아니다.

대선에 출마한 위정자들의 사고방식이 지금도 국민을 정치적 도구로만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 시대는 물론 미래세대의 꼭짓점에 설 수 없는 가장 천박한 발상들이다. 국민들은 국민이 뭘 원하는지 그 부문에 대한 혜안을 가진 인물을 국정지도자로 선택하게 될 것이며 당리당략이나, 지역색과 이념, 학벌타령은 이미 과거정치세력들이 남긴 오물이란 것을 잊어선 안된다. 국민들은 특별한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라 결국 자신들과 행동과 생각이 비슷한 닮은꼴의 인물을 지도자로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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