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사장님 소리 들을때 좋았다…

  • 입력 2006.08.14 00:00
  • 기자명 장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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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장사는 불황이 없다는 말은 이제는 옛말이 되어 버렸다. 제법 이름깨나 있는 음식점도 매출이 뚝 떨어져 하루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재료비와 월세를 내기에 급급하다. 그러니 영세 식당들은 오죽 하겠나.

예전 같으면 한창 붐벼야 할 점심시간인데도 좌석은 텅텅 비었다. 10여년 전만해도 구멍가게라도 사장님 소리 들으며 당당 했는데 변한 세상이 원망스럽다. 출입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장사 못해 먹겠다는 긴 한숨 소리가 절로 나온다.

종일 있어도 손님 열 사람도 못 받는 식당도 수두룩하다. 처음에는 손님이 없어도 무작정 문을 열어 놓고 기다렸지만 이제는 손님 기다리는 것도 지친다.

슈퍼마켓·옷 가게 등 소매업들은 대형마트에 밀려 식당보다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어쩌다 목 좋은 곳에 살아남은 한 두 개의 슈퍼마켓은 종일 들락거리는 손님이라고는 돈 안 되는 담배와 쓰레기봉투를 사는 사람뿐이다. 과자와 음료수는 하루 하나 팔기도 어렵다.

이처럼 자영업자들이 바람 앞의 등불신세가 되어 벼랑 끝에 내몰린 것은 1997년 외환위기때 퇴직자들이 대거 창업에 뛰어들면서부터다. 세상물정에 눈이 어두운 그들은 남들이 돈 벌었다는 말 한마디에 따라 이리 휩쓸렸다가 저리 휩쓸렸다가 한 마디로 묻지마 창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음식점·PC방·노래방 등은 과잉공급으로 꼬시래기 제살 뜯어 먹기 식이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 자영업 종사자 비중이 30%에 육박 OECD국가 평균 13.8%의 배를 넘어섰다. 미국 6.9%에 비해선 4배다. 음식점 수는 대략 우리나라 국민 80명당 1개꼴 이라고 한다. 4인 가족 기준으로 20가구당 1개가 음식점으로 심각한 포화 상태다. 여기서 살아남기란 별따기 만큼 어렵다. 피를 튀기는 생존경쟁이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전국에서 하루 평균 200여개의 생계형 음식점들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여기에다 오랜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꽉 닫은 것도 한 요인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대형마트다. 거대한 자본을 앞세운 초저가 물량공세를 영세업자들이 무슨 수로 당해내느냐는 것이다. 대형마트 하나 서면 수천 명의 자영업자들이 피눈물을 쏟으며 밥그릇을 빼앗기게 된다. 그런데도 대형마트는 끝없이 세워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삼팔선 사오정이라는 말들이 현실화 되면서 그들에게 자영업은 최후의 탈출구자 새 삶의 희망이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서민들이 벌어먹을 만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경제에 어딘가 나사가 풀렸다. 대형 유통점 허가는 계속 나고 노동자들을 잘라만 내지 뽑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쫓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옷가게·식당 등 순서는 뻔하다. 그러니 세계에서 손가락 꼽을 정도로 자영업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생계형 자영업이 다 죽게 되었는데도 정부는 별다른 조치가 없다. 기껏 한마디 툭 던지는 것이라고는 자영업자가 너무 많은 게 문제라고 속을 뒤집어 놓는다. 한 마디로 과당경쟁으로 수익성 악화가 그 원인이라는 철없는 소리다.

따지고 보면 자영업자의 급증은 누가 봐도 정부 정책의 실패다. 각종 규제로 기업은 투자의욕이 꺾였다. 새로운 투자가 없으니 일자리가 없다. 주머니가 얕으니 식당은 파리만 날리는 것은 빤하다. 못사는 사람은 더 못 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양극화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참여정부가 그렇
게 서민을 위한다고 외친 분배정책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은 서민인 셈이다.

강력한 부동산 정책으로 건설시장은 얼어붙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근로자는 말할 것도 없고 건설업에 따른 철물점, 건축자재상 등 관련 자영업자들이 죽을 맛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꽉 막힌 자영업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은 기업이 투자를 늘려 생계형 자영업자들을 기업으로 흡수하는 길이다. 정부가 기업들이 신바람 나게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팍팍 밀어준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반듯한 취업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 월세도 못 건지는 자영업을 굳이 잡고 있겠는가. 한 마디로 경기 활성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자영업자 대책이라는 것이다.

10월 1일 치러질 서울시 7·9급 공무원시험이 932명모집에 15만명이 몰렸다고 한다. 이날 부산발 서울행 고속철 오전 5시와 5시 25분 두 편의 좌석표가 예약을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매진됐다. 임시열차까지 추가로 투입한다고 한다. 이것만 봐도 우리의 고용사정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말해주고 있다.

기업이 창출하는 일자리야말로 영구적이고 안정된 소비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자영업의 안정없이는 경제 회생도 양극화의 골도 메울 수 없다.

장병길/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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