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통석(痛惜)의 염(念)

  • 입력 2012.08.17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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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난 뒤 응원하는 관중이 건네 준 ‘독도는 우리 땅’이란 즉석 스케치페이퍼를 받아 들고 경기장을 질주한 박종우 선수의 세리머니에 대한 IOC의 메달 보류 결정에 찬·반론이 정치권은 물론 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박 선수가 한·일간의 우호를 해친 주범으로 둔갑할 지 아니면 우국지사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란 고사처럼 역대 대통령 중 독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의 유일무이한 통치행위에 흥분한 일본 열도 역시 제국주의의 공동묘지인 야스쿠니 신사참배로 맞불을 놓으며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고 더군다나 이 대통령이 ‘통석의 염’이란 형식적인 사과보다는 일제강점기동안의 살상과 약탈에 대한 실질적 보상과 진정성 있는 속죄를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는 시점에서 자칫하면 인내와 자제로 일관해왔던 양국 간의 표리외교(表裏外交)도 마침표를 찍게 될지 모를 일이다.

특히 애석하다는 뜻의 일본 고위층이 두고 쓰는 ‘통석의 염’에 대한 이 대통령의 비토발언을 지켜보면서 생각나는 게 러시아와 일본을 전쟁전야로 몰고 간 ‘오쓰 사건’이다. 1891년이니 지금으로 치면 121년 전, 당시 세계지도의 6분의 1을 차지한 강대국 러시아의 니콜라이 황태자가 일본을 방문했다. 당시 일본의 분위기도 200년 동안의 쇄국을 마지못해 풀었을 때이니만큼 일본인들의 정서 역시 강대국인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이 없을 리 없었다. 황태자가 의기양양하게 지금의 교토 부근을 지날 무렵 경호에 차출된 일본제국의 말단순사(경찰관)인 ‘쓰다 산조’가 느닷없이 황태자에게 일본도를 빼들고 돌진해 머리를 내리쳤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일본도는 황태자의 모자테두리를 가르고 후두부에 9cm정도의 찰과상을 입히는 것으로 끝났다. 일본 역사서는 이 사건을 우리의 안중근 의사의 애국철학처럼 우상화하여 장소가 교토의 오쓰 지역이었으므로 ‘오쓰 사건’으로 기록해 일본정신의 귀감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오쓰 사건에 대한 일본인들의 입장은 처음과 끝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겐 무자비한 일본인들의 민족성을 잘 대변한 사건이다.

처음 이 사건에 대한 일본의 대응은 야단법석 그 자체였다. 명치 천황이 직접 주제하는 대책회의가 열리고 천황은 애석함을 금할 수 없다는 ‘통석(痛惜)의 염(念)’으로 시작되는 장문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쓰다 산조는 국가이익을 저해한 중죄인으로 취급해 즉각 구속됐는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당시 천황의 칙서를 받아 계엄령을 선포한 내무대신은 후일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당한 이등박문이었다.

그러나 쓰다 산조는 일본인에겐 일본의 법이 우선한다는 ‘고지마 대법원장’의 자국민 인권보호 원칙에 따라 러시아와 일본조정이 원하는 사형이 아닌 무기로 감형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산조를 능지처참해야 한다며 러시아에 굽실거리던 일본인들은 금세 태도를 바꿔 산조와 고지마 대법원장을 애국지사로 칭송했고 고지마는 ‘법의 신’이란 일본사법부의 우상으로 오늘날까지 존경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지금까지 국제문제에서 한·일간의 외교는 수면하의 전쟁으로 이어져 왔으나 항상 당하는 쪽은 우리였고 일본의 입지는 국제적으로 더 강화됐다. 그것은 국가적 문제에도 사분오열하는 한국인과, 국가적 문제에는 하나로 뭉쳐 대응하는 일본인의 민족성 때문으로 생각한다.
박종우 선수 세리머니와 이 대통령 독도방문을 놓고 우리 영토, 우리 주권에 대한 일본의 간섭과 관여는 대응할 일고의 가치조차 없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 일본은 대륙침략의 일환으로 조선을 합병하고 세계의 맹주를 자처했지만 당시 일·소간의 우호조약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종전 직전인 1941년, 소련의 스탈린은 쿠릴과 사할린을 비롯한 북방열도를 소련으로 복속시키고 말았다.

이번 사건도 시간이 흐르면 비온 뒤 우산을 잊는 것처럼 금세 잊고 말 것이다. 허나 영원불멸토록 독도는 우리 영토며 대마도는 일본 땅이다. 8·15 광복절이 엊그제였다. 정부와 국민들의 냉정한 이성적 대응과 애국심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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