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칼럼] 백정 도양열과 개자추, 누가 더 현명했나

  • 입력 2012.09.24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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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정권창출의 주역들이 어떤 처신을 하느냐에 따라 국운의 명암(明暗)이 엇갈렸다. 얼마 전 금태섭과 정준길이라는 분들의 말 춤(?)을 보면서 진실게임을 떠나 이런 저질 정치 토크 쇼는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가중시키는 유쾌하지 못한 짓들로 생각돼 아주 실망했다. 가수 싸이의 말 춤이라면 모를까 이런 춤은 딱 질색이다.

정치가 전쟁이라고 가정할 때 대선후보자의 책사(策士)나 모사(謀士)라면 자신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승패를 결정짓는다는 점을 망각하면 안 된다. 선무당 남의 집구석 망치고 제사상 망신은 꼴뚜기 때문이라는 속담은 그런 경우를 빗댄 것이며 이처럼 측근들의 단순무지한 말과 행동이 전도가 유망한 인물들을 단숨에 추락시키는 사례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장자(莊子)는 이 같은 사람들을 향해 “백정보다 못한 자!”들이라며 꾸짖고 있다. 도공(陶工)이 10년 걸려 애써 만든 도자기를 장에 싣고 가는 게으른 당나귀가 순간에 부숴버린다는 비유처럼.

초나라 소왕이 오나라의 침입으로 타국으로 유랑할 때 궁중의 도살 책임자였던 백정 '도양열'이 왕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후일 나라를 되찾은 소왕은 도양열의 충성심을 높이 사 정승의 직위를 내렸으나 도양열은 “대왕께서 나라를 잃으니 백성인 저도 나라를 잃었고 국권을 회복하자 신도 백성의 지위를 되찾았으니 제 명예 역시 회복된 셈입니다”라고 거절했다. 왕은 어떤 식으로든지 도양열을 조정에 출사하도록 하기 위해 중신 사마자기를 다시 보내 명예직인 공작의 지위만은 받도록 강권했으나 도양열은 “원컨대 소인을 천직인 백정답게 살게 해 주시는 게 제게 내리는 가장 큰 상입니다”며 응하지 않자 결국 왕은 단념했다.

이 비슷한 고사로 한식(寒食)날의 주인공인 개자추라는 인물이 있었다.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신하였던 개자추는 문공이 나라를 잃고 유랑할 때 곡식이 떨어지자 자기의 허벅지 살을 잘라 문공을 아사(餓死)지경에서 구한 충신이었음에도 문공이 국권을 회복한 뒤에 자신을 중용해주지 않은데 실망한 나머지 면산(綿山)으로 들어가 은거해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문공이 후회하며 그를 불렀으나 하산하지 않자 설마 산에 불을 지르면 내려오겠거니? 생각하며 산에 불을 질러 개자추를 하산하도록 유도했으나 산불이 진정된 후 군사들이 발견한 것은 숯덩이로 변해버린 개자추의 사체(死體)였다. 슬퍼한 문공은 개자추의 혼백을 위로해 그가 죽은 날에는 수라(음식)를 들지 않고 굶었으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식은 밥을 먹는 것으로 바뀐 것이 한식날에 얽힌 유래다.

후대의 비평가들이 논하길, 전자와 후자를 평할 때 자신의 분수를 알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천한 백정 도양열의 정신을 높이 산 이유는 그에게는 공을 바라는 탐천지공(貪天之功)이란 자체가 본래 없었고, 개자추는 비록 충(忠)은 백정 도양열에 비해 높았으면 높았지 못하지 않았으나 상전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배제하지 못한 채 나라를 위해 봉사해야 할 경륜을 밥 한 끼도 짓지 못하는 숯덩이로 만든 것이 탐천지공과 다를 바 없지 않느냐?라고 결론을 내린 것은 무욕(無慾)과 유욕(有慾)의 경계를 분명하게 그어준 것으로 이해한다.

정치의 계절이다 보니 모든 대선후보자들은 물론이고, 타고난 성격 탓인지 측근들의 조언 때문인지는 몰라도 암중모색의 오랜 장고(長考) 끝에 정체를 나타낸 안철수 대선후보자 역시 아직은 두어 명 밖에 보이지 않고 있으나 곧 측근보좌역과 책사나 모사를 자처하며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정치꾼들로 그의 가는 길과 대문은 메어질 것이다.

요즈음은 측근보다 택시기사나 운전기사를 조심하라는 말이 정가(政街)에 떠돈다고 한다. 측근의 가벼운 입방정 때문에 일시에 망가진 유명 인사들이 타선지석으로 삼아야할 신판 손자병법의 첫 장에 나와 있는 대목이다. 신중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불시에 얻어 뜯겨서 다치거나 회복하지 못한 채 죽는 것은 백상아리나 피라미나 마찬가지 아닐까? 또한 인생이란 호접지몽(胡蝶之夢) 아닌가. 그렇듯 당신들도, 나도.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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