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론]맹모들의 여름방학

  • 입력 2006.08.18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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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으로 입추가 지났는데 한밤까지 폭염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

이맘 때는 방학 마무리가 한창일 때인데,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어머님이 잘라주시던 큼직한 수박조각을 들고, 밀린 한 달간의 일기며 잘 붙지 않는 풀을 발라 가며 서툰 솜씨로 마분지를 붙이고, 책갈피에 말려 두었던 풀잎들을 꺼내 식물도감에서 이름을 찾아 붙여가며 정신없이 바쁘던 기억이 난다.

요즘 아이들에게 방학숙제란 건 그때의 숙제와는 많이 달라져 컴퓨터의 활용이 필수인 것 같고 바쁜 사람도 아이보다는 맹모들이라고 한다.

맹모들이 바쁜 이유는 또 있다. 방학 한 달여 전부터 선착순 등록인 유명학원과 소문난 강사를 찾아 수강신청을 하고 실기점수를 무시할 수 없는 예체능 학원도 한 두 곳쯤 수소문해야 한다. 어학연수를 가는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되고, 어학연수 갈 형편이 아니면 인근의 대학에서 운영하는 원어민 영어캠프라도 기를 쓰고 보내게 된다. 이쯤 되면 서너 군데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아이들도 지치겠지만 빠듯한 생활비에 아이들 시간에 맞춰 학원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엄마들도 바쁘고 지치게 마련인데, 여기서 지치면 맹모가 될 수 없단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계층간 사교육 격차가 10배를 넘는다고 하고 소득 10%의 최상위 계층의 사교육비는 31만6000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격차가 더 벌어졌고 해마다 지출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사교육비를 많이 지출한다고 해서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거나 학력수준이 향상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겠지만 평범한 가정의 부모라면 소득격차가 학력격차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나 압박감을 받게 마련이어서 무능력한 부모 만나 아이들 미래가 불투명해지지나 않을까 하는 자격지심도 느끼고 다른 것은 몰라도 사교육비만은 지출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하게 될 수치이다.

그렇다면 방학기간 집중 예행 학습을 한 아이들은 어떨까. 아마도 평범한 아이들이라면 개학 후 수업시간엔 되풀이되는 학습내용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해야 할 공부를 미리 해 버려서 학교에서는 복습을 하는 셈이 되는데 같은 내용이라면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것이고 반복되는 내용에 진지하게 집중한다는 것이 아이들로선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나친 확대해석일 수 있겠으나 얼마 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자료 중 초등학생의 25% 가량이 ADHD(과잉행동장애)증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회상과 가정상의 반영이고 지나친 사교육의 열풍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이라는 것이 단순히 학습능력을 기르는 것 뿐만 아니라 교육하는 선생님들과 같이 이루어내는 정서적인 안정이나 생활습관 같은 사회화교육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데, 아이들의 지나친 선행학습은 이를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이란 것을 학습능력을 기르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사교육이 무조건 나쁘다거나 맹모들의 열정이 섣부르다는 것이 아니다. 교과목 외의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의 특기적성을 계발하고 창의성을 길러주는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지나친 사교육이 학교교육의 파행원인이 되게 해선 안 될 것이다.

우선은 학생, 학부모, 학교가 다 만족할 수 있도록 학교교육과정이 충실히 운영되어야겠으나 아이들의 가방을 좀 가볍게 만들어 주어 긴 여정을 성실히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맹모들의 현명함이 우리의 아이들과 우리교육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이인순/경남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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