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굴을 파고 들어가 엎드려야 할 사람들

승인2012.10.08l수정2012.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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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큰 의미에서 바다와 다를 게 없다. 바다는 모든 강과 냇물은 물론 시궁창 오염된 하수까지 받아들인다. 또한 정치 안에 국가와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이 포함돼 있고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공정하게 재단해 처리하는 것도 정치다. 또한 적을 동지로 끌어들이는 것도, 우군일지라도 상식이하라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단도 정치며, 화합과 상생이라는 용어는 곧 용서와 이해를 뜻하기 때문에 호오(好惡)가 개입돼 있다면 그건 싸움이지 정치가 아니다.

자유당 정권이나 유신통치를 통해 영구집권을 꾀했던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은 비극적 종말로 생을 마감했으니 충분히 그 지은 죄 값은 치룬 셈이다. 공과 과 가운데 과만 붙들고 늘어진다면 박 전 대통령의 업보는 대선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딸 박근혜 후보에게 올가미와 덫 같은 장애물로 전도를 막고 있고, 야권의 문재인 후보 역시 천문학적인 국민세금을 적대국인 북한에 무한정 퍼주어 핵을 비롯한 군비확장에 기여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정권의 죄 값(?)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것 역시 엇비슷한 국민여론이다.

이념과 당파와 지역 색을 떠나, 박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때 국민들의 눈물이 강물이 되도록 땅을 적신 이유는 공과 과를 떠나 전직 국가원수의 애통한 서거에 대한 인간적인 예우였다. 한국인의 미학 중 하나는 장례문화다. 즉 망자(亡者)에겐 어떤 이유로든 생전의 애증(愛憎)을 떠나 위로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이 아니던가?

흠과 뉘를 찾자면 우열을 가리지 못하는 세 후보의 결점 또한 비난과 조롱을 면키 어렵다. 다운계약서라는 편법재산증식이 들통 나 구설수에 오른 모 후보가 보인 출사표 때의 천사 표처럼 순백하게만 보였던 삼류 모노드라마도 그렇고, 부친인 전직 대통령 시절 권력의 힘으로 강탈한 학교와 정수장학회 및 유신시절의 사법살인에 대한 과거사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한 만시지탄의 아쉬움을 남긴 후보의 사과도 그렇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조차 편 가르기를 자행했던 편협과 편파에 치우친 후보 역시 오십 보 백보라는 비난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려사(高麗史)106권 주열전(朱悅傳)에 ‘군상지언 장굴지청호(君上之言 將掘地聽乎)’라는 대목이 나온다. 주열이란 강직한 말단관리가 재상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할 말을 하자 재상이 역정을 내며 “재상의 말을 들을 때는 땅에 엎드려 듣도록 하라!” 명했다. 그러자 주열이 분연이 일어나 “재상의 말을 땅에 엎드려 듣는다면 임금의 말은 땅에 굴을 파고 들어가 엎드려 들어야 합니까?”라고 응수하자 조정의 언로가 바로잡혔다.

세상을 개혁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개혁성향인 진보세력의 대변자며 보통사람의 분신을 자처하는 야권 후보라면 진보사상과 보통사람들의 상식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세간의 중론이기도 하다. 진품 진보란 국민의 삶을 진일보 시키는 건강한 개혁이지 통일을 볼모로 한 퍼주기 식의 종북(從北)은 아니질 않나. 철없고 지각없이 신성한 대선 판에 재 뿌리려드는 한물간 보수정치인들과 극좌진보정당의 모 여성 후보와는 상품이 달라야 한다는 얘기다.

세상은 바뀌었고 나라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국민들은 통치권자의 엄포를 땅에 엎드려 듣거나 굴을 파고 들어가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누가 되던 간에 그가 땅에 엎드리거나 굴을 파고 들어가 엎드리는 자세로 국민여론을 겸허하게 듣고 약속을 실천 옮기는 국정수행능력을 겸비한 지도자를 성별에 상관없이 유권자들은 선택하게 될 것이다.

흠이 있는 옥일지라도 숙련된 세공기술자만 있으면 본래의 광채를 발하게 할 수 있다. 그렇듯 정치와 통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질 않나. 지금 대한민국은 도덕적 와해와 주적인 북한의 핵위협과 영토분쟁으로 인한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부디 도탄에 빠진 국가적 위기를 구할 수 있는 지혜롭고 경륜이 있는 지도자가 선출됐으면 좋겠다. 조삼모사한 정치인들의 말의 성찬과 권모술수에 너무 많이 속아놔서.

/수석논설위원경남연합일보  abz3800@gn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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