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갑 칼럼]뭘 잘못했는지 정말 모르나

  • 입력 2006.08.21 00:00
  • 기자명 권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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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의 몇몇 신문사 논설위원들과 오찬을 같이 한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비보도를 원칙으로 한 오찬이어서 자연스러운 말이 오갔을 것이 분명하다. 공식적인 견해를 표명한 것이 아니고 대통령과 참석자간 역설과 비유, 반어법 등 편안한 표현이 오갔다는 게 청와대측의 이야기지만 대통령의 발언 중에 “내가 뭘 잘 못했는지 꼽아 보라”는 발언은 아무리 비공식적이고 부담없는 대화의 자리라 할지라도 이해가 안간다. 지지율이 급락한 것을 두고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지지율이 이렇게 바닥을 헤매느냐’는 투정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이해는 제대로 했다. 분명히 잘못한 게 많으니까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 있다.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는 똑 같다. 국가의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대통령은 그만큼 책임져야 할 일도 많기 때문에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도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결국은 여론을 원망할 수 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또 전임 대통령보다는 지지율이 높다면서 ‘다음 정권 잘해 보라지, 한 번 혼나 봐라’는 심정의 말도 했다. 전임 대통령보다 잘했고 다음 대통령도 나보다 못할 것이라는 뜻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물론 전임 대통령은 IMF체제와 아들 비리문제 등으로 최악의 지지율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에 비하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거의 민생문제 때문이어서 전임 대통령과 비교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 모른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는 성인게임기 ‘바다이야기’와 대통령 조카 노지원씨 관련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는 서둘러 노지원씨가 우전시스텍의 최고경영자 자리와 거액의 스톡옵션을 제의 받았지만 노대통령의 호통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친인척문제로 대통령이 받을 상처를 미리 차단한 것이다. 그것으로 자신의 잘못을 덮을 수는 없다.

지금 국민들은 그런 스캔들을 문제삼지 않는다. 아니 그런데 신경쓸 경황이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민생문제가 더 급하다. 노사간 싸움과 보수와 진보세력간 갈등, 빈부의 격차, 반미와 친미 대결 등 모든 것을 두 패로 갈라놓고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또 있는 자를 원수로 삼고 그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없는 자를 돕는다는 정책은 오히려 서민부담만 가중시켜 모든 국민이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장 밑바닥 민심을 알려면 택시를 타 보라는 이야기가 있다. 너나 할 것없이 대통령이라는 말만 나와도 화를 낸다. “우직하며 서민적이어서 없는 사람을 잘살게 해 줄 사람으로 보고 지지를 했는데 결과가 너무 비참하고 후회막급이다”면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리를 스스럼없이 하는 게 현실이다. “뭐 잘못한 걸 꼽아 보라고? 어떻게 꼽아. 모두가 잘못한 것 뿐인데”라는 택시기사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재래시장이나 식당가의 소리도 마찬가지다. “굶어 죽게 됐는데 누가 지지해 주겠는가. 자기 패거리들만 살맛나는 세상이지 우리야 어디 백성축에나 들어 가느냐”며 손사래를 치는 바닥민심의 진실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흔히 일반 국민들은 이런 어려움을 대통령만 모르는 게 아니냐며 빈정거린다. 국민들은 모두 잘못했다며 선거 때만 되면 본때를 보여 주는데도 ‘그거 별거 아니다’고 일축하는 것을 보면 국민들이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린다.

대통령은 이런 세상민심을 보고받지 않는 듯하다. 측근들은 그냥 좋은 이야기만 하고 나쁜 것은 숨기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잘못한 게 없다’는 푸념을 할 수 있겠는가.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각하 시원 하시겠습니다’라고 했다가 장관이 되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가 아직도 현존한다고 믿는 건 아닐까.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다.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만 소중한 것은 아니다. 절대수의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것이 대통령의 책임이다. 대통령도 지지율에 대해 “고민 스럽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지지율? 그거 별거 아니다. 자신의 지지자와 코드에 맞는 사람을 도울 생각을 버리고 진정으로 국민이 원하는 일을 한다면 지지율은 저절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코드인사는 전직 대통령들이 국민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패거리정치나 다름없다. 엊그제 한 언론사가 여론조사를 한 결과 62.8%가 대통령의 인사가 공정치 못하다고 했다. 나라 살림이 갈수록 쪼그라 드는데다 인사문제마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국민들의 지지율 반등은 기대하기 어려운 듯하다. 국민들의 아쉬움 속에 퇴임하는 그런 대통령이 되기 위해 남은 임기만이라도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정책을 편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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