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반구정과 압구정

  • 입력 2013.01.14 00:00
  • 기자명 김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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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국민대다수의 격앙된 반대론에도 불구하고 지옥의 동아줄처럼 움켜쥔 의원연금 법안을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여. 야가 무효화에 전격적으로 합의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환영한다. 초선만하고 물러나거나 어떤 범죄행위로 단죄를 받아도 사면복권이나 공소시효만 지나면 월 120만원이란 거금의 용돈(?)을 평생 쥘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법안만큼은 여·야도 진보도 보수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어물쩍 넘기려다 신정부 개국(開國)에 옥에 티가 될 것이란 거센 국민여론에 밀려 결국 국회가 백기를 든 것 같다.

이런 도둑정치가 판치는 여의도 정치를 지켜보며 생각나는 게 있는데 목민과 청렴의 대명사로 꼽히는 반구정과 세도의 대명사로 꼽히는 압구정이다. 압구정(鴨鷗亭)은 세조 때의 반정공신으로 성종 때까지 3대에 걸쳐 세도(勢道)의 원조로 손꼽히는 한명회가 노년의 유희를 위해 지은 화려한 정자고, 반구정(伴鷗亭)은 조선 초기의 권신 황희가 노년에 향리인 파주 땅에 세운 검소한 정자다. 황희 선생은 고려 말의 선비로서 이태조의 삼고초려 끝에 조선조 개국에 참여해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영의정이란 벼슬만 18년을 지냈으나 선생이 기거하는 집은 하늘의 별이 보이고 비가 오면 대야를 바쳐야 했던 청렴의 표상이기에 우리 시대의 입만 가지고 청백리를 자처하는 중앙과 지방의 조구지신(鳥口之臣 간신들의 자화자찬)들과 새삼 비교되는 부문이다.

살생부를 만들어 잔인무도하게 정적을 깡그리 척살하고 권좌에 오른 한명회의 마지막은 그 죽은 무덤까지 파헤쳐져 썩은 백골마저 부관참시(剖棺斬屍)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황희 선생은 오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교과서적인 위정(爲政)의 사표로 남아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당선인이 된 박근혜 대표의 인수위원회와 조각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국민들이 많기에 한 나라의 운명을 가름하고 국정을 안정시키는 데는 덕이 있고 곡직을 가릴 줄 아는 유능한 정치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압구정과 반구정을 거론해 보는 것 뿐이다. 조선이 오백년 동안 장수한 것은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재상으로 꼽히는 황희 선생 같은 인물을 발탁한 통치권자의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선생은 성품이 강직·청렴했으며, 사리에 밝고 정사에 능해 역대 왕들의 신임을 받았지만 때로는 소신을 굽히지 않아 왕과 다른 대신들의 미움을 사서 좌천과 파직을 거듭했다. 그는 오랜 관직생활 동안 조선 초기의 국가 기틀을 바로 잡는 데 힘을 기울였다. 현실적으로 불합리하거나 중복·누락된 부분이 있던 경제육전(經濟六典)을 집대성해 법전의 정비에 힘썼으며, 농업생산력 발전을 위해 농사의 개량과 종자 보급을 실행하고, 양잠을 장려하여 궁핍한 백성들의 의식주를 향상시켰다.
세종대에는 4군 6진의 개척, 외교와 문물제도의 정비 등을 지휘·감독했으며 왕과 중신들 간의 마찰을 중화시키는 등 세종을 도와 성세를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452년(문종 2년) 사후에 세종 묘에 배향되었고, 1455년(세조 1년)에는 순충보조공신남원부원군(純忠補祚功臣南原府院君)에 추증되었다. 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과 장수 창계서원(滄溪書院)에 제향 되었고, 파주의 반구정에 영정이 봉안되었다. 저서로 〈방촌집〉이 있다. 시호는 익성(翼成)이다.

지금 국민들은 새 정부 출범에 앞서 박근혜 당선인이 철저한 검증을 통해 한명회 같은 ‘압구정 스타일’보다는 황희 선생 같은 ‘반구정 스타일’의 청렴도는 물론 원칙과 유연성을 겸비한 인재들이 대거 발탁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천정부지로 솟는 물가고와 나라의 내일을 걱정케 하는 인물난과 상식 없는 건달정치에 국민들의 수심이 어느 때보다 드높은 시점이기에.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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