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거세개탁과 제구포신

  • 입력 2012.12.31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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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임진년은 십이지(十二支)에서 용을 뜻하며 거세개탁(擧世皆濁)이란 사자성어로 한 해를 점쳤다, 거세개탁이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흐려있다, 라는 비판적 뜻이었다면 새해 2013년 계사년의 사자성어는 제구포신(除舊布新)으로 묵은 것은 물러가고 새로운 기상이 도래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춘추좌씨전 소공 17년조에 나오는 대목으로 불길함은 곧 희망을 주는 전조(前兆)라는 얘기다. 금년 한 해는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동시대처럼 특정계층을 제외하고 대다수 국민들의 삶은 피폐했으며 정치는 안정되지 못했다.
지나간 시절의 정치여정을 보면 국민을 위해 신명을 바치겠다고 한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간혹 정치인 가운데 목숨을 버린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범죄행위에 대한 죄 값 대신 자살을 택한 사람들이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다 목숨 버린 사람들은 드물었다. 그러므로 약속과 맹세만 난무하고 실천과 실행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거세개탁이란 사자성어에 어울리는 말이다. 그러나 혼란하기 때문에 그 혼란을 잠재우는 인물이 나타난다면 곧 희망이 된다.
흐리고 혼란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이 없다면 성인이 필요 없고 시궁창이 없다면 연꽃은 평범한 꽃과 다를 게 없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 피어나기에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출현하듯이. 모두가 잘살고 잘나고 고통이 없다는 천국과 극락세계에서 핀 연꽃보다 오탁악세(五濁惡世)라는 흐린 사바세계에서 핀 연꽃이 더 의미가 있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고진감래(苦盡甘來)요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해서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나쁜 일을 겪고 나면 좋은 일도 있는 법이다.
모든 것을 혼자서 독차지 할 수 있는 권한을 하늘은 어느 누구에게도 준 적이 없다. 그런데도 가장 빨리 파멸을 맛 본 사람들은 혼자서 독차지하고 혼자서 해결하려는 야망과 욕망 때문이었다. 또한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상대를 악용하는 사람들의 끝판도 마찬가지다. 이조 500년사에서 가장 성군이었다는 세종대왕 때도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고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약자들의 삶은 언제나 비참하고 고달팠다.
새해에 국민이 바라는 것은 상식과 원칙이 바로 잡힌 세상을 원하는 것뿐이다. 대선은 끝났고 천하는 안정을 되찾아 가는데 정치권 집단에만 살기가 번득인다. 선거도 전쟁이기 때문에 피아간에 양보 없는 설전(舌戰)과 책략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을 지나치게 공격했다고 당선인이 추천한 수석대변인이란 인물을 끌어내리려는 패장 편에 선 저격수들의 사보타주 역시 거세개탁이다. 패배한 쪽에 선 지식인들과 언론들과 용병(?)들은 선거전 때 정적을 향해 마냥 입 다물고 있었나?
민주주의가 지켜야하는 절대원칙은 51.6%라는 결과에 대한 승복이다. 새로운 지도자와 함께 희망이 넘치는 미래의 조국, 복지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더불어 힘을 보태는 게 진정한 패자의 대도가 아닐까. 승자도 패자도 공히 국민을 위한 봉사를 천명했다면 이기고 지는 게 무슨 대수란말인가? 흐린 시궁창에서 핀 연꽃이 가장 아름답 듯 거세개탁이 결코 나쁜 징조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송구영신의 길목에서 사람마다의 소원은 절망과 고통의 삶이 희망과 보람이 깃든 제포구신 같은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그런 세상은 대립과 반목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또한 주변국들끼리의 영토분쟁, 북한의 핵위협, 내수불황과 겹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앞에서 국가의 경제와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으며 여·야나 등을 돌렸던 48% 국민들의 도움이 없다면 국정은 또 난파선처럼 좌초하고 말 것이다.
피아간의 화합과 나눔, 상생의 정치야말로 부국강병의 초석이 되고 흐린 물을 맑게 흐르게 하는 여과장치가 돼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탈출시킬 처방전이 되리라 생각하며 계사년에는 제구포신(除舊布新)처럼 국운이 번창해 모든 국민들과 경남도민, 그리고 경남연합일보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가정에도 다복함이 깃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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