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창환씨의 화실

레스토랑을 화실로 쓰고 있다.

  • 입력 2006.04.19 00:00
  • 기자명 이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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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유창환씨의 화실. 소담한 집이 아니라 스케일이 커서 실망스럽다. 수정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진동 쪽으로 난 길의 고개를 넘기 전에 왼쪽으로 보면 그의 화실이 있다. 산비탈의 솔밭 속이다. 처음에는 집 앞에 차를 세우고는 한참이나 두리번거렸다. 러브호텔에 잘못 왔나 생각했다. 레스토랑 유리문을 열고 화가가 얼굴을 내밀었을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찾아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겉보기에는 러브호텔이고 레스토랑이었다. 실제로 러브호텔과 레스토랑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화가는 화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호텔건물은 아마 방치되어 있는 것 같았고 레스토랑을 반으로 잘라 화실 겸 전시실과 찻집으로 쓰고 있었다. 찻집의 룸은 쾌적하다.
창문을 통해 솔숲이 보인다. 솔숲 군데군데에 설치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후배들이 만들어 놓았다는 작품들이다.

찻집 룸에서 실내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2층은 세미나실이다. 세미나실 이용자는 대체로 미술인들이다. 미술인들이 알음으로 와서 약간의 요금을 지불하고 룸을 빌린다.
찻집 한 켠의 전시실은 일종의 대안공간이다. 평소에는 작업실로 쓰면서 유사시에는 작가들에게 무상으로 빌려준다. 작업실이 전시실로 사용될 때는 유씨의 작품들은 일단 다른 룸으로 피신한다.

지금의 전시실에는 지난달 중순 대우백화점 갤러리에서 전시했던 작품들이 아직 묶여진 채로 바닥 여기저기에 있었다. 전시회를 열면서 한 두어 점정도의 작품을 팔고 남은 것들이다.
화가는 “병원 원장님들이 작품을 사 주어야 하는데 병원 쪽에서는 찾는 사람이 통 없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작품의 색깔이 검은 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어 병원에 걸기에는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작품들은 모두 하얀 스티로폼에 석탄과 백묵, 석고를 발라 제작했다. 하얀색과 검은 색이 대비를 이룬다. 그가 표현하는 검정색과 백색은 자연과 인간, 죽음과 생존을 상징하고 있다.
그에게 자연과 죽음의 농도가 인간과 생존의 농도보다 더 짙은 걸까. 하얀 색은 보이지 않고 왠지 검은 색만 보인다. 고통의 바다 건너에 있는 색이다.

그의 작품들을 통틀어 ‘휴식’이라고 붙인 이유를 알 것 같다. 휴식의 이면은 삶의 투쟁이리라.
유창환은 늘 인간과 현실과 역사를 다루어 왔다. 한마디로 삶의 투쟁을 그려왔다. 그가 사용한 소재도 인간의 삶 속에 치열하게 사용되어 오다가 천덕꾸러기 폐기물이 된 스티로폼이고, 지금은 시대의 저 편에 가 있지만 노동자의 애환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석탄이 또 다른 소재이다.
그의 작품에는 이데올로기가 묻어난다. 그의 이데올로기를 두 시기로 나눈다면 처음 10년과 이후의 10년이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다니면서 노동자 문화단체에 가서 일했다. 데모하는 사람들 속에서 걸개그림을 주로 그렸다. 자연히 인권의 유린, 공해문제, 통일에 대한 열망, 구석진 현실의 폭력, 놀이화된 전쟁이 주제였다.
신문지를 잘게 잘라 점토화시킨 뒤 형상들을 빚어내는가 하면, 라면박스, 각종 폐품을 이용해 평면회화와 오브제를 조화시켜 작품을 만들었다.

톤은 붉은 색과 검정색으로 처리해 그 시대의 어그레시브(agressive)한 사회면을 표현해 냈다.
이후 10년간 다룬 주제는 환경오염, 정치 경제적 비리, 마약 등이다. 거기에다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가 표현되고 있다.

찻집의 한쪽 구석에 그의 초기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붉은 깃발’이라는 작품으로 임수경씨가 북한 갔을 때 모티브를 얻어 그린 것이다.
“임수경씨를 만나면 선물할려고 했던 것인데, 아직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어요.”
화실을 나오면서 주변을 한 번 빙 둘러 보았다. 역시 영 크다. 유창환씨가 수년 전 처음 이 곳에 올 때는 화실만 빌렸었다.

그런데 레스토랑이 문을 닫으면서 집주인이 화가에게 점포열쇠를 맡기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찻집까지 떠 맡게 된 것이다. 덕택에 적자의 폭이 훨씬 커졌다.
그래서 요즘에는 작품활동보다 아르바이트를 더 많이 나간다. 화가는 작별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그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찻집을 잘 소개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우리 찻집은 세미나실로도 적격입니다. 계모임 하기에도 좋아요. 풀장도 있어서 여름에는 가족끼리 와서 피서하기에도 좋습니다.”이현도기자 yhd@jo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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