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대통령의 ‘약속’

  • 입력 2013.10.28 00:00
  • 기자명 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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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란 한 인간의 인격과 품격을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가늠자와 같다. 우리는 흔히 주변에서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성(性)을 갈겠다거나, 손에 장을 지지겠다.” 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필자가 칠순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약속 불이행을 지키기 위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을 바꾸거나 인두로 손을 지져 병원에 입원한 사례를 보지 못했다.
우리가 미개한 구시대라고 폄하하는 2천여년 전에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상황은 국민들, 특히 약자나 소외계층들은 믿음이 없는 세상, 약속이 없는 땅에서 유배형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법가사상의 태두로 역사에 오르내리는 ‘공손앙’은 나무 막대기를 대궐 문밖에 세워놓고 그 나무를 동으로 옮겨 꽂는 사람에겐 백금을 주겠다고 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반신반의하며 행동에 나서질 않았는데 한 무뢰배인 상민이 밑져야 본전 아니냐? 라며 나무를 옮기자 공손앙은 그에게 즉시 백금을 포상금으로 지급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조정의 약속은 신뢰로 이어졌고 그 뒤로 법을 지키고 따르지 않는 백성들은 드물었다. 이목지신(移木之信)이란 고사의 어원이다. 연(燕)나라의 소왕(昭王)이 재상 ‘곽외’에게 부국강병의 대의를 묻자 “죽은 천리마를 오백금에 사들이면 살아 있는 천리마를 즉시 얻게 될 것입니다” 라고 했다.

당시 왕과 제후들이 착취만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인재가 몰려들 까닭이 없었다. 곽외는 제후의 약속을 천리마에 빗대 소왕을 설득했고 왕이 이를 실천에 옮기자 연나라에는 국내외로부터 인재가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그 힘을 바탕으로 당대의 강국인 제(齊)나라를 제압할 수 있었다.
선종외시란 여기에서 비롯된 말로 큰일을 도모하는 사람은 자신과의 약속이전에 상대와의 약속도 충실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때 공약(公約)한 노령 기초연금법안과 장애인 연금 법안이 공약(空約)이 됐다고 노년층과 장애인들이 아우성이다. 오죽 창피했으면 해당부서의 판서(判書:장관) 벼슬을 헌신짝 팽개치듯 내던진 인물이 있었을까? 약속이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하는 엄중한 도덕적 규범이며 또한 당락을 가르는 데 그 공약이 중요한 구심점이 됐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국가원수에 오른 분이 선거 때 이런 중대한 공약을 해놓고도 지키지 않는다면 약속을 지킬 정치인이 있을까? 라는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매년 투입되는 막대한 4대강 보수공사, 불요불급한 행정부 예산과 정부나 지방정부 산하 공기관과 국책은행의 방만한 운영시스템만 개선하고 절약해도 기초노령연금은 자동으로 해결될 수 있는 예산이 넉넉하게 확보될 것이다. 뒤에 지키겠다는 약속 따위를 믿을 국민은 없다.

이처럼 눈 가리고 야옹하는 식의 공약(空約)들은 건국 이후 전 정권들에게도 부지기수였다. 작금에 사초실종이라며 게거품을 무는 여권이라면 이명박 정권 때 벌어진 수만 건의 외교문건 사초폐기도 검찰조사를 병행하도록 공평한 목소릴 내야 맞질 않나.

또한 앵벌이 민심투어로 거리로 나선 야권은 티 없이 순백한가. 국민의 주권정의를 위한 돌격대라면 국회라는 링 안에서 룰을 지키며 당당하게 결판을 내야지 국민을 볼모로 한 장외격투기는 실격이다.

여권과 야권 공히 재 묻은 개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처럼 보인다. 공직이란 국가와 민족을 앞장 서 이끌고 나가는 천직에 속한다. 그러한 명예가 주어진 만큼 권리와 의무 역시 엄정하게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모든 별정직과 일반직 공무원, 군인, 공기관의 임직원들, 그리고 선생님이라는 교육자나 수만 개가 난립한 종교계의 성직자들 역시 공직자나 스승, 성직자가 아니라 존경할 가지조차 없는 단순 봉급쟁이로 비쳐지는 건 왜일까? 진짜 웃기는 건 파렴치한 의원연금법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 몰래 세비 올리고 수당 올리고 보좌관 늘릴 땐 여야건 진보정당이건 모두 한통속으로 기억돼서 말이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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