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는 돋보기

  • 입력 2007.05.28 00:00
  • 기자명 권경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물이 맑아서 산 그림자를 깊게 안고, 산이 높아서 물을 늘 깊고 푸르게 만들어 주듯이 살고자 합니다”

신 새벽 침상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주기도문 외듯이 암송하며 돋보기를 찾는다. 요즈음 읽고 있는 책 몇 장을 읽고 하루를 시작한다.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사춘기를 남들보다 두텁게 겪었다. 이년여의 시간을 아들과 나의 감정의 전쟁터(?)에서 허비하다 나름대로 얻은 깨달음이요 습관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떤 배경이 되어 줄 것인가? 있는 그대로를 포용하고 수용하는 자연의 섭리와도 같은 관대함과, 앞선 말보다 먼저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효과를 기대해 본다는 것이 나름의 결론이었다. 매일 아침 책을 읽는 모습의 엄마를 보는 아들은 조금씩 달라져 갔고, 지금은 아들도 아침에 일어나서 서너 장의 책을 읽은 다음 하루를 시작한다.

봄꽃도 먼저 지는 것이 있듯, 내 신체 중 눈이 먼저 지는 듯하다. 돋보기를 친구들보다 조금 먼저 쓴 것이 그 예이다. 돋보기의 도움으로 확대 되어진 글과 또렷하게 보이는 그림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세상을 보는 것처럼 기분 좋은 일이지만, 멀리 있는 것 까지는 보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다.

내 아이의 성장을 보는 것도 그러하다. 부모와 어른의 잣대로 맞추려 하니 시대에 맞지 않는 불편함도 있었고, 갈등도 있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돋보기와 원거리 안경을 번갈아 사용하는 조그만 불편함을 감수 한다면 아이의 내면과 미래까지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촌부가 자식에게 어릴 적부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인내의 싸움을 등산으로 극기력을 길러 준 실천하는 교육과, 이 세상에서 ‘가장 바쁜 여인’으로 뽑혔던 영국의 대처 수상이 이사 간 딸집에 가서 의자를 밟고 올라서서 페인트를 칠하는 보도사진을 오래전에 본 일이 있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음악을 보는 듯 그 어떤 부귀영화보다 행복한 것임을 뉘우치게 하던 그런 장면이었다. 이렇게 자녀교육은 실천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반면, 희랍신화에 아들 딸 낳은 대로 뱃속에 다시 집어넣어 과보호 하는 크로노스 신이 보여주는 ‘문명 붕괴의 문명병’이 지금 우리의 가장 심한 환부가 아닐까 싶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대기업 총수의 지극한 ‘부성애’가 그 본보기다. 자식이 밖에서 맞고 오면 기분 좋은 부모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그대로 되받아 치는 건 그 또한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리세서 노블레스(Richness Oblige)’·‘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세계 명문가 자녀교육의 모토이다. 부자나 지도자층의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존경을 받고 그것을 실천해야만 한다는 당위성마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일은 책임을 지는 일임을 생각하자.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아름다움과 시듦·삶까지도 책임지는 일이어야 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망가뜨리는 다각적인 잘못을 하고 있지는 않은 지 알아 볼 일이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