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곡식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

  • 입력 2014.03.12 00:00
  • 기자명 이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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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의 음주 습관을 논어 향당편(鄕黨篇)에서는 ‘주량이 무량이되 난잡하지 않았다’고 서술돼 있다.

조선 22대 국왕인 정조에게 한 신하가 “전하, 공자님께서 주량이 무량이되 난잡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이옵니까?”라고 여쭈었다.

정조는 “주량이 무량이라고 하신 것은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할 때 술을 마시지 않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술을 마셔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기쁘게 한껏 먹는 것이다”고 했다.

즉, 중요한 일이 있어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할 상황이면 주변 유혹을 극복하고, 술을 마시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고, 중요한 일이 마무리되어 기쁜 자리가 되어 축하를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함께 즐거워하며, 기쁘게 마시되 난잡하게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정조의 음주 철학이자 공자의 음주철학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자는 주역(周易)을 완성하면서 64괘 중 마지막 괘인 ‘화수미제(火水未濟)’ 마지막을 음주문화와 관련해서 정리했다.

술을 마시는데 믿음을 두면 허물이 없거니와(有孚干飮酒 無咎), 그 머리를 적시면 믿음을 두는 데 바름을 잃으리라(濡其首 有孚失提)! 술을 마실 때 상대방과 믿음을 갖고 사이좋게 마시면 불신과 허물을 없앨 수 있지만, 너무 많이 먹고 취해 이성을 잃으면 잘못된 행동으로 오히려 신뢰를 깬다는 것이다.

공자가 주역 마지막 괘를 ‘술 마시는 것을 경계하라’고 한 것은 그 당시에도 그만큼 잘못된 음주문화가 많았고, 그로 인해 역사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논어에서 ‘몸가짐에 부끄러움이 없으며, 곳곳에 사신으로 가서 군주(君主)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선비라 부를만하다”고 바른 처신을 하는 관료를 칭송한 것이다.
최근 모 언론인이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경찰에 전화를 걸어 “내가 신변에 위협 받고 있으니 경찰을 보내라 달라”는 신고를 해 경찰이 출동했으나, 사실이 아닌 헤프닝(happening)으로 확인돼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음주 행동에 망신을 톡톡히 샀다.

이를 현장에서 지켜본 사천시민 A씨는 “주점에서 언론인이 술을 마시다가 자신 위치(位置)의 과시와 객기(客氣)를 부리기 위해 경찰을 보내달라고 요구해 경찰이 도착한 결과, 신변 위협은커녕 싸운 흔적도 없고 모두들 술판이 벌어져 있는 것을 확인, 경력을 소비하고 허탈한 모습으로 돌아간 경관의 모습을 보며 자숙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며 경솔함을 지적했다.

특히 기고만장(起高萬丈)한 꼴을 본 사람들은 “엉터리 신고로 경찰을 출동시킨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처신이다”며 “시민의 재산과 안녕을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는 경찰에게 엉터리 신고를 해 출동시킨 것은 지탄 받아야 한다”는 소리가 필자의 귓전에 맴돌고 있다.

지난 2012년 10월께에도 H식당에서 퇴직공무원 등 일행 5명과 술을 마시다 갑자기 경찰에 전화를 걸어 지구대장(경감)을 불러놓고는 ‘얘들’이라며, 어린애 취급하듯 발언을 해 나쁜 술버릇으로 망신을 당했다.

술버릇 나쁜 동종업계의 한사람으로 인해 무더기로 매수되는 현실 앞에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생각하는 동료들의 아름다움이 만물이 소생하는 봄바람의 전령사처럼 느끼고 싶다.

따라서 곡식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진리를 가슴에 품고, 지역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으로서 공자의 음주 철학과 바른 처신을 이어받아 마음에 깊이 새겨보길 권하고 싶다.

/이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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