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밤에는 잠을 자는 면역 능력

  • 입력 2014.05.27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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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리듬이라는 말을 한번쯤은 사용해 보았을 것이다. 시험 전날의 벼락치기 공부나 말만 들어도 기분이 들뜨는 해외여행의 후유증으로 겪는 시차증(jet-lag)이 규칙적으로 자고 깨는 수면활동 리듬이 깨져서 생기는 증상이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잠을 자는 수면활동 뿐 아니라 인체는 하루를 주기로 ‘경미한’ 생리적 변화를 반복한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이 생체리듬은 100가지가 넘는데, 뇌파, 체온, 심장박동수, 수면, 호르몬 분비 등이 리듬을 타는 대표적인 생리현상들이다.

동물 뿐 아니라 식물 그리고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는 지구 자전이 만들어 내는 일일주기에 맞춰 스스로의 리듬을 만들고 이에 따라 생명활동을 이어나간다.
이동이 가능한 동물은 해가 떠 있는 낮에 활동하고 어둡고 기온이 낮아지는 밤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잠을 잘 수 있지만 일단 싹이 나면 뿌리를 내린 자리에서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식물에게 있어서 생체리듬은 그야말로 생존 그 자체가 된다.

낮에 일어난다고 알고 있는 광합성 유전자는 사실 동트기 직전에 발현하기 시작한다. 해가 가장 뜨거운 한낮에 기공을 닫아 식물체 내의 수분 증발을 막아 주는 것도 생체리듬 유전자들이 한낮이라는 시간에 맞춰 기공을 닫도록 체내에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다. 또한 밤 시간의 저온에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당을 전분으로 바꿔서 체내에 저장하게 하거나 저온에 견딜 수 있는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하는 활동은 매일 저녁이 되기 직전에 시작되고 아침이 되기 전에 다시 원상태로 회복된다.

식물의 이런 생체리듬은 미생물과의 상호작용에도 관여한다. 식물은 일차적으로는 기공을 닫아 병원균의 침입을 막지만, 일단 침입해 들어온 병원균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어체제를 가동하여 적극적으로 대항한다.

흔히들 유도저항성(induced resistance)으로 알려져 있는 방어체제 동안 파이토알렉신 등을 비롯한 방어물질이 증가하거나 세포벽이 두꺼워지는 등 방어기작 등이 일어나고 관련 유전자들이 활발히 발현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공이 닫혀 있는 밤 시간동안은 이런 방어기작의 가동률이 저하되어 병원균에 대한 발병률이 증가하거나 증상이 심해지고 기공이 열려있는 낮 시간에는 방어기작들이 활발히 가동되어 병원균에 대한 면역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태양 빛의 유무나 밤낮의 기온 차를 감지하여 시간을 인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광수용체 유전자나 생체시계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켜 제 기능을 못하게 하면 병원균에 대한 저항성이 현저히 떨어져 식물의 병 피해 정도가 심해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또한 병원균이 식물체내에 침입하게 되면 생체시계 유전자들의 발현이 변화시켜 기주 식물의 생체리듬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이 입증됐다.

인류가 식물을 재배하여 농업을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도전을 받아왔던 식물병, 작물의 생산량과 질을 유지하기 위해 화학적 방법 뿐 아니라 환경친화적 물질 개발을 통해 이를 방제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되어 왔고 병원균과 숙주식물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들이 있었다.
병원균과 식물 양쪽에서 병원성과 저항성에 관여하는 주요 유전자들도 대규모로 밝혀지고 있다. 현재 많은 연구자들이 식물-병원균 상호작용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찾아내고 병원균이 병을 일으키는 과정을 밝혀 근본적인 병저항성 대책을 강구하는데 식물 생체리듬은 고려돼야 할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이다.

최근에 같은 약을 먹더라도 생체리듬에 잘 맞춰 복용하면 약효는 커지고 부작용이 적어진다는 개념을 다루는 시간의학(chronotherapeutics)이라는 학문이 연구되고 있다. 이 개념을 환자의 복약 지도와 질병치료에 활용해 하루 중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시간에 약을 복용하도록 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실제로 아침에 잠에서 깨면 혈압이 올라가는 특성을 고려해 잠자기 직전에 혈압 약을 복용, 아침 5시부터 12시까지 최고의 약효를 발휘하도록 만들어진 약을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청 혈압의 생체리듬을 고려한 이 혈압약의 시판을 허용한 사례가 있다. 이 밖에도 혈중 콜레스테롤이 저녁이나 밤중에 생성되므로 이를 낮추는 약도 저녁식사 후 복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오전 8시쯤 간이 약을 가장 잘 대사시키므로 이 무렵 항생제를 복용하면 약효가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다. (출처 중앙일보)

연애 초기 호기심에 가득 찬 남동생이 나와 내 남자친구의 생년월일을 알려 달라 했고 어떤 사이트에 들어가 이를 입력해 두 사람의 바이오리듬을 이용한 궁합을 봐준 적이 있었다. 머잖은 미래에 우리는 식물의 이름과 파종한 날을 입력하여 생육 시기별 발병가능성이 있는 병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얻고 예방과 치료에 필요한 방제약을 뿌리는 시간까지도 처방받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농촌진흥청 생물소재공학과 / 김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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