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나무 예찬(禮讚)

  • 입력 2014.12.16 00:00
  • 기자명 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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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마을 동구 밖에는 수호신처럼 수백년을 살아 온 듯한 큰 정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우람한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아마 어림잡아 500~600년은 될 듯 싶다. 이 정자나무는 이팝나무라고 하는 수종인데 그 규모도 커지만 모습도 매우 아름답다.

이 정자나무는 내 고향 마을의 자랑거리며 내 고향의 명물이기도 하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 와서 사느라 늘 바쁜 생활에 쫒겨 자주는 가지 못하지만 추석과 설 명절에는 어김없이 고향에 가는데 그때마다 정자나무는 늘 즐거운 웃음으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어떤 때는 바람에 나무가지가 흔들려 마치 어서 오라면서 손짓을 하는 듯 하기도 한다. 그래서 고향에 가면 계시지 않는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안아주는 듯한 포근한 마음을 나에게 선물한다. 나는 고향에 가면 이 정자나무를 부모님처럼 그리워하고 형제처럼 사랑하며 친구처럼 대한다.

나는 어릴 때 고향 마을에서 살면서 늘 정자나무 밑에서 지내곤 했다. 여름 더운 날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에 농사일을 하다가 힘이 버거우면 잠시 이 정자나무 밑에 와서 쉬곤 했다.

그래서 이 정자나무 밑은 마을 어린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고 장기나 비둑을 두는 어르신들의 쉼터이기하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 농촌 생활도 변화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내 고향 마을 정자나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늠름한 모습을 그대로 자랑하고 있다. 언제봐도 믿음직스럽기만 하다.

내가 도시에 와서 결혼하고 자식들과 한 가족을 구성해 살아가면서 인생이 고달플 때는 고향 마을에 있는 정자나무를 생각하곤 한다.

나뭇가지가 파랗게 숲을 이룬 잎들을 보면 그야말로 새로운 삶의 용기와 힘이 솟아난다. 하나 둘 모아 잎들이 뭉쳐서 큰 무리를 이룬 우람한 자태야말로 스스로 고달픔을 이겨내는 자가 얻는 보람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또한 사는 것이 외로울 때에도 나는 이 정자나무를 생각해 보곤 한다. 촘촘히 얽혀진 가지들을 보면 비좁은 공간에서도 까치들에게는 보금자리 주택을 제공하고 새들에게는 쉼터를 마련해 주는 후덕한 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것 뿐이겠는가? 스스로 외로움을 참아 내는 자가 얻는 행복이 또한 여기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며칠 전 내가 이사 온 동네에도 정자나무가 명물로 보존돼 있다. 내 고향 마을의 정자나무와 너무 빼닮아 고향의 정자나무로 착각할 정도다.

무거운 가지와 잎을 떠받치고 있는 밑둥은 두 팔로 어른 두 사람이 보듬어 안을 수 있는 크기라 힘겹게 오랜 세월을 견디고 있는 것은 순결한 징표가 아니겠는가.

오래 참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의지가 여기가 있음을 정자나무는 알려준다.

정자나무는 의지의 상징이며, 삶의 끈기이며 방황하는 인생을 바로 잡아서 편안하게 사는 길로 인도해 주는 이정표다. 또한 인내의 표상이며 사랑과 열정으로 살아가는 위대한 선구자이다.

가을이 오면서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같이 정자나무 밑에는 나뭇잎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 나뭇잎을 보는 내 마음에는 덧 없는 세월의 흐름이 풍경화처럼 그려지고 외로움이 가슴에 와서 쌓인다.

나뭇가지에서 짝을 찾는 까치의 울음소리가 내 영혼에 뜨거운 눈물을 고이게 한다. 인간도 태어나 자연속에서 하나의 연약한 나뭇잎처럼 저렇게 떨어지면서 삶을 마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인생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진다. 겨울이면 정자나무는 큰 온실과 같은 역할을 한다.

찬 바람을 막아주기에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정자나무 밑에 들어서면 엄마같은 따뜻한 숨결이 들린다.

또한 눈이 아무리 내려도 정자나무 밑에는 눈이 쌓이지 않고 많은 눈들을 가지들이 지붕처럼 떠받쳐준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지만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겨울에도 앙상한 나뭇가지만으로도 추위를 잘 이겨내는 것을 보면 인내력도 대단하다. 나이가 많으면 제 몸 하나 지탱하기도 어려울 텐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탄성이 절로 나온다. 겨울 추위를 잘 참아낸 정자나무는 봄이 되면 파란 새싹을 틔우며 새로운 또 한 해의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새싹은 작은 잎이 되고 작은 잎은 여름이 되면 하나의 작은 숲을 이룬다. 그리고 늠름한 자태를 또 한 번 세상 사람들에게 보인다.

나는 가끔 삶이 고달플 때에는 이 정자나무를 생각하며 새로운 용기와 힘으로 삶을 다독이며 굳은 의지로 열심히 살아간다.

/명리학자 권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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