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세계화 시대에서의 한글

  • 입력 2007.10.09 00:00
  • 기자명 이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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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61돌째 맞는 한글날이다. 한글을 구성하는 기본 자음인 ‘ㄱ, ㄴ, ㅁ, ㅅ, ㅇ’은 각각 ‘어금니, 혀, 입술, 앞니,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이고 글자의 모양은 그 소리가 나는 혀나 입안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한글은 발성기관을 본뜬 것이다. 소리를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지금은 녹음시설이 발달해서 소리를 붙잡아 놓을 수 있지만 세종대왕 시대에 붙들 수도 볼 수도 없는 소리를 문자로 그려놓은 것이 한글이므로 우리는 한글이 과학적이라고 말을 한다. 고도의 음성학적 바탕에서 한글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이다.

북한의 언어학자 권종성씨는 모음의 기본자 ‘천(·), 지(ㅡ), 인(ㅣ)’도 발성기관을 본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는 하늘 모양인줄만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이 소리가 날 때 나타나는 목구멍의 모양이고, ‘ㅡ’는 땅의 모양이 아니라 이 소리가 날 때 혀가 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ㅣ’는 이 소리를 발음할 때 혀가 곧추서진 모양의 표기이다. 모음도 소리를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뭐니뭐니 해도 한글의 과학성은 오늘날 휴대전화라는 첨단기기를 통해 여실히 입증이 되고 있다. 휴대전화의 좁은 좌판에서 복모음을 포함해 한글의 전체모음을 천·지·인 3자로써 간단하게 합성할 수 있는 글자가 한글 말고 또 있겠는가. 휴대전화의 천·지·인을 누르며 글자를 만들다 보면 기분이 흡족하고 뿌듯하다.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한없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우리나라사람은 매일 휴대전화를 들고 휴대전화의 키를 누르면서 우주천지자연의 원리를 체험하고 첨단과학으로 어우러진 언어의 세계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글이 훌륭하고 좋으면 뭐하나? 내가 즐겨 사용하고 남들이 즐겨 사용해야 진가가 발휘된다. 더욱이 해가 갈수록 인터넷과 영어를 통해 유럽화로 착착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한글이 좋다는 둥, 한글을 가꾸어야 한다는 둥 주장하는 것은 민족주의나 국수주의처럼 낡고 진부한 이념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 한글을 우리나라 사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드러내 보이고 그들도 공유할 권리를 가져야 하는 시대이다. 우리나라 사람만을 위한 어문정책이 아니라 세계인을 위한 어문정책이 필요한 시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어문정책에서 한글을 단순화 획일화 보편화시키는 작업을 소홀히 하고 있다. 한글자모의 이름과 로마자의 두가지 면만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한글 자모의 이름을 500년전 한자시대에 쓰고 있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ㄴ’을 니은(尼隱), ‘ㄹ’을 리을(梨乙), ‘ㅁ’을 미음(眉音), ‘ㅂ’을 비읍(非邑), ‘o’을 이응(異凝)이라 적으면서, ‘ㄱ’을 ‘기윽’라 부르지 않고 기역(其役)이라 부르고, ‘ㄷ’을 ‘디읏’이라 부르지 않고 디귿(地末)이라 부르고, ‘ㅅ’을 ‘시읏’이라 부르지 않고 시옷(時依)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명칭들은 한글이 없던 한자시대에 임기응변으로 붙여진 이두식 이름들이다.

북한을 본받자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에서는 ‘기역’을 ‘기윽’으로, ‘디귿’을 ‘디윽’으로, ‘시옷’을 ‘시읏’으로 고쳐 쓴지 오래됐다. 새대에 부응하는 한글정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발음을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 로마자표기법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문제점들을 많이 안고 있다. 지금의 로마자 표기법은 외국인이 국어 발음을 하도록 도움을 주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체계가 아주 복잡하고 획일성이 없고 단순성도 없다. 지면관계상 한가지만 지적하자. 로마자표기법은 ‘외국인이 국어발음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인데 그 외국인이라는 것이 영어를 말하는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다. 예를들어 로마자 ‘ch’는 영어발음에서 로마자 표기법대로 ‘ㅈ’을 기대할 수 있지만 로마자 발음이나 독일발음이라면 ‘ㄱ’이고 프랑스어발음이라면 ‘ㅅ’이다.

외국인 발음을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글을 세계인들이 보고 읽고 옮겨 쓸 수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현도 문화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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