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가을다운 가을을 기다린다

  • 입력 2007.10.16 00:00
  • 기자명 이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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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밤이 만들어가는 것 같다. 낮은 여름처럼 더운데 서늘한 밤이 가을답다. 그래서 가을의 정취는 밤에 더 깊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하얀 달빛 아래서 보는 하얀 메밀꽃이 제 격인 것처럼 말이다.

요즘 기후가 밤에는 긴 옷을 걸쳐야 하지만 낮에는 반팔 옷을 입고 돌아다녀도 될 정도이다. 지난 일요일에는 기후가 후덥지근해서 반팔을 입고 시내를 쏘다녔는데 그날 밤은 한기가 들 정도로 추웠다. 일교차가 심해도 참 심하다.

서울은 다른 모양이다. 남쪽은 낮과 밤의 일교차로 여름과 가을을 오락가락하며 가을을 기다리고 있는데, 서울 쪽 뉴스에 따르면 설악산에는 단풍인파가 술렁이고 첫눈이 온다는 소식이다. 그것도 예년보다 열흘이나 앞서 오는 눈 소식이다.

이 쪽에서는 가을다운 가을냄새도 아직 느껴보지 못했는데 겨울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매우 섭섭하다. 산이 사람을 아직 여름에 남겨두고 제만 혼자 밤새 단풍산을 만들어 놓고는 또 다시 겨울 준비를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에게 빛바랜 사진이 있는데, 87년 10월 19일이라는 날짜가 찍힌 것을 보면 20여년이 지난 사진이다. 남녀 동료들과 마산 무학산을 오르다가 관해정 앞의 큰 은행나무아래에서 샛노랗게 물든 은행덤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꼭 이맘때의 가을인데도 은행잎이 땅바닥에도 많이 깔려 있는 것을 보면 그 때엔 지금과 다른 깊은 가을 속인 것 같다.

20년 전의 관해정 은행잎은 샛노랗게 물들어 있는데 오늘 본 관해정 은행나무 이파리는 아직 성성하고 파랗다. 때가 어느 때인가? 지금이야말로 은행잎을 샛노랗게 물들이면서 깊은 가을의 서정을 쏟아내야 할 시간이 아닌가. 그런데도 은행잎이 아직 파랗다니?

지구 온난화 현상인가. 나이를 먹은 탓인가. 파란 나뭇잎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잘못 봤나? 가을이 와도 예전 가을 같지가 않고 그 가을이 온들 예전처럼 길게 머물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깝다.

한자어로 옮기자면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라고 쓴다. "가을이 와도 가을 같지가 않다"는 뜻이다. 이 문구의 원래 어원은 "봄이 왔건만 봄 같지가 않다"는 유명한 싯구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패러디했다.

사실 봄도 예전의 봄 같지 않고, 여름도 예전의 여름 같지 않은 것이 요즘의 우리나라 기후이다. 지난 여름에는 얼마나 많은 비가 왔던가? 기상대가 장마라고 이름 붙였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장마기간 보다 장마 이후에 비가 더 많이 왔고 그 많은 비가 너무 지겹게 느껴졌던 계절이었다. 계절의 여신은 남쪽에도 곧 북쪽의 우리나라처럼 단풍철을 갖다 주겠지. 그러나 그 단풍철도 잠시일테고. 왁자지껄 한 바탕 단풍구경을 하고 나면 긴 겨울이 온다.

이 계절에 단풍말고 재밋거리가 뭐가 있을까. 14일에는 진주유등축제가 폐막을 했다. 유등축제는 진주라는 도시가 자랑스러울 만큼 화려하고 대단했다. 강건너에서 밤의 조명을 받고 있는 진주성과 '촉석루(矗石樓)' 현판, 그리고 강에 뜬 다양한 유등들이 진주라는 도시가 세느강을 끼고 있는 파리 못지 않은 풍광이었다.

하동 북천에 있었던 코스모스 메밀꽃 축제도 괜찮았다. 철길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코스모스가 일품이었다. 지난 여름을 벌겋게 달구었던 거창국제연극제를 비롯, 마산의 세계연극총회와 밀양 여름공연예술축제는 또 얼마나 좋았던가? 수준급의 연극 작품들을 서울이 아닌 우리 지역에서 만끽 할 수 있었던 기회였고 그 기회는 성황이었다.

이제 우리지역의 축제는 이달 말께 열리는 마산 국화축제가 남아 있다. 실내축제로 통영국제음악제와 마산의 국제연극제도 있고. 그리고 가을의 축제들은 끝이 나게 된다. 그 때 쯤에서야 가을다운 가을이 오려나? 영랑의 시는 추석 전에 이미 단풍이 들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오매, 단풍 들것네" /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오아 /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 "오매 단풍 들것네" / 추석이 내일모래 기둘리니 /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 "오매, 단풍 들것네"' (영랑 시 '오매 단풍들것네' 전문)

이현도 문화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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