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기 세상읽기]종교계의 참회(慙悔)와 참회(懺悔)

  • 입력 2007.11.02 00:00
  • 기자명 하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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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가 봉암사결사(鳳巖寺結社) 60주년을 맞이해 ‘부처님 법대로 살자’ 라는 구호아래 자체정화에 들어간 듯싶다. 봉암사(鳳巖寺)는 경북 문경의 희양산(曦陽山)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이 희양산은 북한산 인수봉, 진안의 마이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바위머리 산에 속하는데 풍수에서는 이러한 철모(鐵帽)나 바가지, 종(鍾)모양의 바위산을 봉황(鳳凰)이라 말한다.

큰 모양을 비룡포란(飛龍抱卵)형이라 부르는데 봉암사는 이 비룡포란에 세워진 가람이다.

또한 이 사찰에는 우리나라 금석문(金石文)의 최고봉인 지증대사적조탑에 새겨진 비명(智證大師寂照塔, 碑銘)을 볼 수 있다.

고운(孤雲)최치원이 쓰고 분황사의 혜강이 새겼는데 ‘鳴呼, 星回上天 月落大海: 슬프다, 별들은 하늘로 올라가고 달은 대양에 떨어지누나” 로 시작되는 비문을 읽어보면 선종(禪宗)이 처음으로 신라에 소개 된 것은 도의선사가 전한 것 보다 150년 전인 7세기 중엽 법랑(法郞)이 중국선종 4대조 도신(道信)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었는데 당시로는 크게 선풍을 일으킬 문화적 성숙이 없었기에 지리산 단속사의 신행(神行)에서 준범, 혜은으로 명맥만 유지해 오다 드디어 고손제자가 되는 지증(智證)에 와서야 비로소 큰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래서 봉암사의 선풍은 구산선문(鳩山禪門)중 해외파인 남종선(南宗禪)이 아닌 국내파의 북종선(北宗禪)의 전통을 지닌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는 봉암사에서 일제에 의해 변질된 이 나라 불교의 개혁과 중흥을 위해 성철, 청담을 위시한 훗날 고승, 대덕(高僧, 大德)으로 이름을 남긴 승려들이 모여 결사를 했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유서 깊은 이곳에서 한국불교가 자체정화의 뜻을 다짐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불교는 우리 고유의 전통종교가 아닌 인도에서 중국을 통해 들어온 이른바 외래종교다. 수입되어 들어온 불교는 이 나라에 공헌도 크게 했지만 좋지 않는 폐해도 많았다.

동국대학과 S, B 씨 연루사건으로 불거진 불교계의 곱지 않는 시선들은 그동안 쌓여왔던 불교계의 부정적 이미지가 이 사건으로 인하여 수면위에 부상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협과 세속화가 불교를 수 천 년 동안 지탱해 왔을는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개혁에 부단한 자체 반성 등 참회와 참회 없이는 발전은 고사하고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속인보다 더 심한 세속화, 정치권력에 대한 집착, 편 가른 이념화 등으로 오염되어 갖추어야 할 기본인 자기수련과 희생을 거부하는 이기적 집단으로 보여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월 24일 종교개혁 490주년을 맞이해 한국기독교목자협의회도 ‘한국교회의 정신과 본질회복을 위한 결의문’을 발표했다.

‘한국교회는 여전히 신학적으로 진보 및 보수, 전통과 이단으로, 정치적으로는 친미와 친북. 친정부, 반정부적 교회로 분열되어있는 현실이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내면적으로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져 경건의 모양만 지닌 채 물량주의와 세속주의에 함몰되어 한국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이 모든 왜곡된 현실의 일차 책임은 목회자인 자신들에게 있다고 하며 반성하는 자세로 기독교의 기본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영적인 공동체 정체성회복, 팽창일변도의 전도정책 탈피. 교회본질회복을 위한 자기갱신, 낮은 곳으로의 이웃되어 섬김의 사명완수 등 네 가지를 다짐했지만 간단히 말해서 참회하고 참회하여 기독교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므로 전혀 새로운 말씀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사건은 그동안 기독교의 왜곡된 믿음의 폐해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아왔던 부정적 시각들이 얼마나 많으며 또한 신랄한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세계적으로 공인된 사실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모든 종교형태는 그 종교 중에서도 가장 극렬한 보수성과 광신성(fundamentalism)이라 총칭되는 신령 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사이비 종교와 고등종교와의 차이는 “자기비판능력이 없느냐?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20세기는 종교의 흥행이 극에 달했던 시기로 이 흥행은 자본(돈)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21세기는 자기비판을 수용하고 조직의 리더쉽이 자유롭게 교체되며 종교가 흥행이 잘 안 되는 그러한 종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종교는 필요악이라 말하는 분들도 있다. 그것은 종교로 인한 병폐가 극심하기 때문인데 그러나 종교자체가 그렇게 인간에게 악(不善)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종교를 앞세워 불선을 일어 키고 인간의 욕망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종교는 악(不善)보다는 그 본질인 선의 엄청난 에너지가 있기에 본질적으로는 선하지만 인간에 의해 악(不善)으로 나타난다.

솔직히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종교계에서 참회(慙悔)에서 참회(懺悔)로 자체 정화와 기본정신의 정립을 스스로 표방하고 자기비판능력을 시험하고 있어 크게 환영하며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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