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비로소 입 열고 눈 뜬 진해시민 의식

  • 입력 2007.11.05 00:00
  • 기자명 권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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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는 토호세력의 뿌리가 어느 지역보다 깊다. 뿌리 깊은 나무가 아니라 뿌리 깊은 악의 축들이 정계와 경제계, 유흥업소는 물론 심지어 가장 소외계층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포장마차나 노점상에까지 개입하고 있다고 한다.

작은 소도시여서 충분히 사회적 논란거리가 될 만한 사건이나 사안도 나서기 입장 곤란한 이웃사촌이라는 구실로 입을 봉하거나, 지식인들조차 말썽의 근본 요인을 과감하게 지적하는 게 아니라 애써 피하려는 자세를 견지해왔다.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은 고조본기(高祖本紀)편에서 바른 일에 나서지 못하고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는 부류들을 폄하해 운주유악(雲珠?幄)이라고 꼬집었다. 앞에 나서지는 못하고 뒤에서만 남이 알까봐 비겁하게 음모를 꾸미거나 소곤댄다는 말이다. ‘운주’란 점을 칠 때 사용하는 ‘산가지’며 ‘유악’이란 가만히 들어 앉아 계획을 꾸민다는 장막을 뜻한다. 이런 치들은 매판자본주의에 오염돼 이익은 뒷전에서 남보다 더 밝히면서도 겉으로는 교언영색에 능통해 그 위장된 화술에 속아 넘어가지 않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렇게 지역에서 힘깨나 쓴다거나 유지라며 떵떵거리거나 지식인이라며 거들먹거리는 분들도 정의가 목전에서 짓밟히는 현장을 피하고 외면하는 데는 남다른 일가견을 지니고 있는 운주유악의 도시가 바로 진해다.

혹자들은 그런 진해를 암흑의 도시, 침묵의 도시라고 혹평해왔다. 전형적인 군사도시에다 인구 대부분이 현역이거나 그들과 연계된 인과관계로 얽혀있어 선의의 피해자로 낙인 찍힐까봐 비판의 바튼 소리를 기피해왔다고나 할까?

갓난아이가 눈을 뜨고 어린아이가 첫 걸음마를 떼고 엄마, 아빠, 라는 소릴 처음 내는 것처럼 진해의 입과 눈이 비로소 열려졌다. 기폭제는 모 시의원의 언어폭력에서 비롯됐지만 그 뒤를 이어 확실치는 않지만 모 도의원이 관여됐다는 장애인 등치기 수법이, 피해자의 따님이 진해 시정게시판과 진해시 공노조 게시판에 호소문을 올리면서 그동안 억눌러 참았던 시민과 네티즌의 저항의식이 비로소 악의 축들과 맞대결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구태여 일제강점기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시민의 힘이 군대가 보유한 전투력이나 화력보다 강하다는 것은 3.15의거와 4.19 의거 등, 반 독재투쟁을 통해서 역력하게 목격한 사실이다. 간디나 소크라테스의 비폭력 저항의식의 밑바탕에는 자신의 죽음으로 민중들은 살리고자 하는 외경의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의를 지키는데 힘을 보태지 않고 불의에 입을 봉하고 있는 자칭 유력인사나 지식인들이 과연 간디나 소크라테스의 숭고한 철학적 신봉자인가? 라는 데는 좀처럼 동의하기 어렵다.

뿌리 깊은 나무뿌리를 제거한다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지역에 깊이 뿌리 내린 토호세력이란 악의 뿌리를 제거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그들도 손 놓고 방관만 하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오랫동안 축적된 인적, 물적, 세력들과 그 세력을 추종하는 지원세력이 만만찮다.

그러나 도도한 물과 화산은 견고한 제방과 태산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다. 의로운 시민들의 힘과 힘이 보태진다면 어떤 악의 제방과 태산도 붕괴될 것이다. 다만, 의로운 시민들 틈새에 끼어 그 힘을 정치적이나 개인 사욕 등, 자신들의 목적의식에 악용하려는 음흉한 이중인격자들의 흉계에 놀아나지 않도록 유념하길 당부한다. 올곧고 정의로운 시민운동이 기회주의자나 악의 축들인 운주유악의 무리들에게 이용당한다면 자칫 죽 쒀서 개주는 격이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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