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기 세상읽기]법학전문대학원과 전문대학원시대

  • 입력 2007.11.09 00:00
  • 기자명 이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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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law school)이라 부르는 법학전문대학원의 입학정원을 두고 교육부와 대학 당국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다. 교육부는 정원을 애초 1500명에서 2000명으로 5백 명이나 늘려 주었으니 크게 양보(?)했다고 생색이지만 대학들은 그 정도로는 지금까지 전문대학원 준비를 위해 퍼 붓다시피 한 돈이나 시설에 비해 턱도 없이 적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애시 당초 대학이 가르치는 학생을 모집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입학정원을 정한다는 건 냉정히 생각해보면 원론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처사다. 정원이란 모집해서 교육하는 대학당국이 알아서 정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과 더불어 정부가 대학입학 전체 정원수도 정하고 대학이 개설하려는 학과목도 허가를 받아야만 학생을 모집해 교육할 수 있게 되어있는 이상한 교육규제정책을 고수해 오고 있는 나라다.

중 고등학교, 즉 중등교육은 규율을 기본으로 하는 반면 초등학교와 대학은 자율이 기본으로 자유와 규율의 리듬이 바로 교육이다. 그런데도 국가는 교육의 모든 걸 교육부라는 정부의 특별규제 부서를 정해두고 초등과 중등 대학 모두를 제도와 규율로 통제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즉 로스쿨은 날로 심화되는 국민들의 질 좋은 법률 서비스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목적으로 변호사 등 율사(律士)들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시행하게 된 것이다.

그 주장이 전혀 틀리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숫자가 많아진다 해서 목적한대로 제공되는 법률서비스가 아주 획기적으로 질이 좋아 질 것이라 생각 하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치 의학계도 치 의학전문대학원이 생겨 지금은 목하 대한민국은 전문 대학원 시대다. 대학원이 아닌 대학만을 나와서는 어느 분 말씀처럼 ‘깜도 안 되는 세상’이 된 모양이다. 이미 우리는 의사과잉 시대에 살고는 있지만 의사숫자가 부족 할 때 보다 질적인 면에 있어 의료 서비스가 획기적으로 좋아졌다고는 보지 않는다.

전문대학원을 유치해야 일류대학으로 인정? 받을 수 있으며, 대학당국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웬만한 사학들은 존폐여부가 여기에 달렸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43개 대학들이 로스쿨을 유치하겠다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준비가 끝났는데 정원 2천명이면 고작 20개 대학만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헛일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인이 많아진다 해서 그만큼 그 분야서비스가 좋아진다는 건 아주 유아적 발상이다. 숫자가 늘어나면 적은 수일 때 보다 서로 경쟁체제로 변하니 당연히 경쟁에 이기거나 살아 남기위해 서비스가 좋아지게 마련이라는 원론적 공식을 의심 없이 맹신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에 대한 법률서비스가 개선되고 좋아진다는 게 어떤 걸 의미하느냐에 달렸다.

낮은 비용, 절차간소화, 시간절약, 적절한 설명. 이런 게 법률 서비스의 질적인 개선일까?

병원은 빠르고 정확한 진단과 환자의 빠른 회복이 무엇보다 의료서비스 최고의 개선이다.

환자 앞에 의료진이 호텔 종업원처럼 항상 머리 조아리고 굽신거리며 환자가 해 달라는 대로 해 주는 그런 게 결코 진정한 의료 서비스의 질 좋은 개선은 아닐 것이다. 초창기엔 그런 걸 서비스 개선이라 할는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빠른 시간 안에 적은 비용으로 재판이란 절차를 거쳐 관철되어 승소하는 그것이 바로 최고의 법률서비스 개선이다.

병을 고친다든지 재판에 승소 한다든지 우선 본질적인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수임자( 受任者)가 최선의 노력을 하느냐 않느냐가 서비스의 진정한 질적 개선이라는 말이다. 겉보기만 좋은 호텔식 서비스는 그만큼 고비용을 감내해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고학력 화이트칼라 시혜자(施惠者)는 수요가 적으면 수요자체를 창출하는 법이다. 숫자만을 늘
이면 일부 선진국의 변호사들처럼 수요를 창출하는 부작용과 부익부 빈익빈의 모순이 생기며 그 결과는 고스란히 수혜자(受惠者)인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되어있다. 너무 낮아진 법률 수임료는 숫자놀음으로 법률서비스 배급화가 될 우려마저 적지 않다.

해방이 되어 정부가 수립 되면서 사회 제 분야는 거의 미국식 제도로 바뀌었지만 유독 교육과 법률만은 미국식을 배제하고 독일이나 일본식으로 남거나 바뀌었다. 여러 나라 제도들 가운데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나라의 제도들을 조사 후 취사선택해 해방된 조국의 앞날을 기약했던 우리선배들의 현명하신 선택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결과적으로 지금 개혁과 국민의 신뢰가 가장 필요한 부서는 공교롭게도 법률과 교육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의 증대되는 요구를 대학원제도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국제화에 우선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무조건 많은 숫자를 처음부터 요구하여 수년 후 야기될 흔하면 천해져 야기되는 사회문제를 모른 척 간과해서도 안 될 일이다.

서로 손익계산서에 의한 기 싸움 같은 줄다리기는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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