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박재삼시전집.박재삼기념사업회 엮음. 도서출판경남. 912쪽. 4만6천원.

  • 입력 2007.11.19 00:00
  • 기자명 이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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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시전집이 나왔다. 박재삼기념사업회(회장 정삼조)가 엮었다. 그가 일생동안 간행한 15권의 시집을 순서별로 묶었다.

박재삼은 김소월로부터 발원해 김영랑·서정주로 이어지는 한국 전통 서정시의 맥을 이은 시인이었다. 그는 우리말을 의미나 개념에만 맞추어 쓴 것이 아니라 운율에 맞추어 리드미컬하게 구사했다. 그의 시는 무엇보다도 가락이 뛰어났다.

‘소시쩍 꾸중을 들은 날은 / 이 바다에 빠져드는 노산(魯山)에 와서 / 갈매기 끼룩대는 소리와 / 물비늘 반짝이는 것 / 돛단배 눈부신 것에 / 혼을 던지고 있었거든요. (중략)’ (‘노산에 와서’ 일부)

노산은 시인이 소시적 갖은 생각을 가다듬던 삼천포 앞바다의 언덕이다. 노산공원에서 건너다 보이는 신수도의 경관이며 멀고 가까운 섬들의 경관 그리고 호수같은 바다의 풍광도 좋지만, 스치는 바닷바람이 좋다.

이 곳에 박재삼기념관이 들어선다. 박재삼기념관은 지난 9월29일 개토제를 시발로 터를 닦고 건축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일찌감치 시인의 대표시 ‘천년의바람’을 새긴 시비가 있다.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 아, 보아라 보아라 / 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 사람아 사람아 /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 탐을 내는 사람아.’

시인은 일본 동경에서 출생해 유년시절 부모를 따라 사천의 삼천포항으로 이주해 왔다. 아버지는 삼천포 앞바다에서 품팔이를 했고 어머니는 생선장수를 했다. 그는 절대궁핍 속에서 소년시절을 보내야 했고 매우 어렵게 삼천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53년 <문예〉에 시조 ‘강가에서’를 추천받은 후 1955년 〈현대문학〉에 시 ‘섭리’·‘정적’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내 나이 벌써 63세이니 / 얼마를 / 이 땅 위에서 살 게 될까. / 갈수록 기억력이 흐려지고 / 조금 전에 들은 것도 / 멍청히 잊고 마네. / 그러나 어린 시절에 익혔던 / 노래나 친구의 이름은 / 또렷이 뇌리에 남아 있네. (…중략…)’ (‘이런상황’ 일부)
시인은 우리나라 나이로 65세에 세상을 떠났다. 생애를 궁금해 하던 때인 63세에서 햇수로 2년을 더 살은 셈이다.

그는 1955년부터 〈현대문학〉등에 근무하다 1968년 고혈압으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된 이후 일정한 직업을 갖지 않았다. 삶은 위장병과 당뇨병 등의 병마에 시달린 고달픈 삶이었다. 시작(詩作)을 하면서도 약 25년간 요석자(樂石子)라는 필명으로 바둑 관전평을 집필해 생계를 해결해 나갔다.

박재삼은 모더니즘·민중주의 등과 같은 경향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대에도 어떤 계파에 몸을 두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지켰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고향 바다의 비린내가 묻어나는 서정과 비극적 사랑,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 등을 노래했다. 그는 전통적 가락에 향토적 서정과 서민생활의 고단함을 실은 시세계를 구축한 시인, 한을 가장 아름답게 성취한 시인, ‘슬픔의 연금술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때로는 그의 시들이 ‘퇴영적인 한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생활과 직결된 눈물을 재료로 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강바닥 모래알 스스로 도는 / 진주남강 물맑은 물같이는. / 새로 생긴 혼이랴 반짝어리는 / 진주남강 물빛 맑은 물같이는, / 사람은 애초부터 다 그렇게 흐를 수 없다. // 강물에 마음 홀린 사람 두엇 / 햇빛 속에 이따금 머물 줄 아는 것만이라도 / 사람의 흐르는 세월은 / 다 흐린 것 아니다, 다 흐린 것 아니다. // 그런 것을 재미삼아 횟거리나 얼마 장만해 놓고 / 강물 보는 사람이나 맞이하는 심사로 / 막판엔 강가에 술집 차릴 만한 세상이긴 한 것을 / 가을날 진주남강가에서 한정없이 한정없이 느껴워 한다.’ (‘남강가에서’ 전문)

이현도기자 ik@gn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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