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순수 자연색 ‘쪽물을 자연에 담다’

  • 입력 2015.03.03 21:19
  • 수정 2015.03.03 21:25
  • 기자명 /조홍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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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배광경
▲ 재배광경

靑出於藍而靑於藍 氷出於水而寒於水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으나 쪽은 남색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에서 나왔으나 물보다더 차다

쪽염 엑기스로 폐암 말기 극복…4개월 시한부 20년째 생존
연구 10년 만에 원액 만드는 법 터득 ‘경남 최고장인 영예’
40여년 연구 자료 연구소 화재로 소실 ‘자료 복원 급선무’
다력 45년 차박사…전통 계승 발전물질·정신적 도움 절실
 

 잠들었던 우리의 전통문화를 일깨우는 고집 센 쪽물장이 古潭 金廣水, 그는 지금 쪽빛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 세상은 화엄(華儼)의 세상이며, 불(佛) 보살(菩薩)의 세상이다.

 ♤ 한국의 대표색 ‘남색’

 “쪽빛(藍色)은 방위로는 동쪽에, 계절로는 봄에 해당한다. 오행 중 목(木)으로, 하늘과 무성한 식물 등을 상징하는 색이다. 우리나라는 지리적 위치가 동쪽에 위치한 까닭으로 예로부터 매우 중요시 했던 색이다. 해가 떠오르는 동방에 해당되고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인 까닭에 청색은 청정한 생명을 상징하며 양기가 왕성한 색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적색과 함께 삿된 것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벽사기복의 색으로 즐겨 사용되었다. 각각 간장, 눈, 신맛과 연결되어 있다. 방위로는 동쪽을 뜻하므로 해돋이, 밝음, 등과도 연결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신생과 약동, 생명과 탄생, 신화 속의 천지개벽이나 천지창조의 첫 순간을 나타내는 색상이다.”
 고담 김광수 선생의 저서 ‘쪽물의 신비’의 일부 내용 중 쪽빛에 대한 설명의 일부이다.

 ♤ 쪽물의 사용·기록은 삼한시대·처음 사용 ‘불확실’

 쪽풀은 세계적으로 40여종이 분포되어 있고 그 중에 고담 쪽풀은 여뀌과에 속하는 요람(蓼藍)은 한국을 중심으로 중국, 일본 등에 일부 분포되어 재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쪽물의 사용은 삼한시대부터 사용 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나 처음 사용은 언제부터인가 확실하지가 않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의 원문인 靑出於藍而靑於藍 氷出於水而寒於水(청출어람이청어람 빙출어수이한어수)는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으나 쪽은 남색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에서 나왔으나 물보다 더 차다란 뜻이다.
 또한 청출어람은 스승이 제자를 길러내고 그 제자가 열심히 배우고 익히다보면 어느 땐가 스승을 능가하는 실력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애기한다. 이 처럼 스승이 제자를 키우는 과정이 힘들다는 표현인데, 천에다가 이 쪽물을 들이는 것 또한 쉽지 않다고 하는데, 솜씨가 능숙치 못하거나 약간의 실수로 물이 잘 들지 않았을 때 그걸 내놓으면서 에이 쪽 팔려, 쪽 팔린다고 일컫는데 여기서 쪽팔린다는 말이 유래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처럼 천에 쪽물을 들이는 과정이 스승이 제자를 길러내는 인고의 과정처럼 오랜 기간 정성과 혼신의 노력을 다 할 때 비로소 완성 될 수 있는 숙련의 과정이라 말 할 수 있다.

 ♤ 어린 시절 사찰에서 쪽에 대한 얘길 듣다

 경북 경주시 건천읍이 고향인 고담 김광수는 어린 시절 집안 환경 때문에 자주 동네 뒷편 절에 놀러가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스님들로부터 불교 교리를 배우면서 어려운 한자를 접하게 되었는데, 스님들은 불교 교리를 어린 아이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불교의 색과 음식으로 표현하였으며 이 때 자주 쪽을 비유하였고, 이러한 사정으로 인하여 어린 시절부터 쪽과 차에 대한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으며 이러한 성장 배경 덕분에 쪽과 차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76년 전통염색연구소를 설립하여 우리의 전통인 쪽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1983년 고담쪽물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쪽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지 10년 만에 첫 액체 쪽물 제조에 성공하였다. 이 기간 동안 ‘규합총서’·‘산림경제’ 등 옛 문헌을 뒤지고,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까지 쪽염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일본 도쿄의 한 박물관에서는 불화가 그려진, 1000년 가까이 된 쪽염 족자를 보기 위해 사흘 동안 찾아가 사정하여 그 족자를 보았으며, 쪽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의문이 커져갔으며 이러한 의문을 하나, 하나 풀어나가는 과정이 마치 쪽과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것처럼 고민을 하면 할수록 그 문제점에 대한 해답이 보여 현재까지도 쪽물은 신의 선물로 생각한다.
 
 ♤ 10년의 산고 끝에 쪽 염색법 스스로 터득

 호남지역에서 쓰는 이남 방식, 일본 스쿠모 방식, 중국의 남전에 의한 방식 등의 쪽염법은 그가 어릴 때 들은 것과는 달랐다.
 “주로 호남지역이나 영남의 강이나 바닷가 지역에서 주로 행하였든 쪽염 방법은 대궁까지 쪽을 잘라 항아리 속에 넣고 하루에서 엿새간 담궈 쪽물을 뺀 뒤 쪽을 건져내면 빠진 녹색물에 석회(조개나 굴껍질을 불에 태워 가루를 낸 것)를 썩어 만든 침전물인 인디고에 잿물을 부어 만든 염료로 염색을 한다. 제가 노스님들로부터 들은 내용에는 석회를 넣는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 고민에서부터 시작된 쪽 연구는 본격적으로 연구한지 10여년의 연구 끝에 석회를 쓰지 않고 바로 원액을 만드는 법을 터득하게 됐다. 그는 연구 과정에 뭔가 알 수 없는 영적인 각성으로 알게 된 듯하다고 밝히면서 우리 조상들이 붉은색의 쪽이 파란색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듯이 자신도 쪽에 대한 의문에 의문을 품음으로 그 의문 속에서 해답을 찾게 되었다며 이 과정이 신의 산물임을 그 때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 후 쪽에 대한 연구 결과의 산물로 2002년 쪽물 제조방법 및 숙성장치를 출현하였고, 2004년 쪽물 제조숙성장치를 실용실안 등록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 폐암 말기 극복 ‘쑥뜸과 차와 쪽염 엑기스’ 덕분

 1995년 말께 어느 날부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폐암 말기라는 것이었다. 소세포암이었다. 의사가 이 병은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나술 수 없는 병이라면서 의학적으로는 4개월 최대 생존기간이 6개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바로 방사선 치료에 들어갔으나 4개월 가량 방사선 치료를 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어 어짜피 죽을 것이라면 “쪽염이나 해보고 죽자”는 생각으로 다음해 2월 퇴원한 뒤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 산자락으로 들어갔다. 매일 새벽 2시간 참선을 하면서 쑥뜸과 차와 쪽염 엑기스를 복용했을 뿐, 다른 치료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방사선 치료 후유증 말고는 아픈 데 없이 지금껏 잘 살고 있다. 그는 암을 이길 수 있었던 요인으로 쑥뜸과 차와 쪽염 엑기스를 계속 복용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하늘에서 새로운 삶을 준 것은 쪽염에 대한 열정을 이 땅에 심어놓고 올라오라는 하늘의 뜻으로 생각하고 마지막 남은 인생 쪽염을 위해 불사르겠다고 다짐했다.

 ♤ 차는 우리의 것! 다력 45년의 차박사…차 대중화에 힘씀

 대학시절부터 불교에 심취해 있던 그에게 사찰음식을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차를 가까이하게 되었으며, 차를 마신 것은 45년 정도되며 본격적으로 차에 대하여 배운 것은 25년 정도된다. 그의 차에 대한 열정은 차가 우리의 것인데도 커피 소비량의 0.3%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차의 대중화에 힘써야겠다는 생각으로 1989년 부산 차인연합회를 발족해 감사 및 연수원장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다. 그는 차가 우리의 것이라는 증거로 수많은 어휘들을 열거했다. 추석 등 명절에 지내는 차례(茶禮)의 차자, 명절의 하나인 ‘설’이라는 단어가 ‘해를 넘긴 차’를 뜻하며, 지명에서도 부산 동래 온천장의 옛이름 ‘차밭골’ 밀양의 ‘다전’ 등이 있으며, 생활용어에서는 ‘다반사(茶飯事)’의 다자, 차곡차곡이라는 부사의 차자 등 수많은 단어들이 차와 연관을 갖고 있다. 이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으로 분명 차는 우리의 것이다. 그는 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차 재배 기술까지 겸비한 다력 45년의 차박사로도 유명한 그는 쪽을 연구할 당시부터 차를 가까이 한 소박한 차인으로서 삶도 같이 하고 있다.

 ♤ 연구소 화재로 소실 자료 복원이 급선무

 2012년 그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그가 쪽을 연구한지 40여년이 되든 해에 연구소가 화재로 인하여 전소되면서 그동안 연구를 위해 모아 두었던 희귀자료와 문헌 등이 일순간 한 줌의 재로 살아지게 되었으며, 당시 쪽 염색을 전통계승하기 위해 배우기 위해 같이 동고동락하던 문하생들도 화재 발생으로 기거 할 곳이 없어 제 살길을 찾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서, 지금은 쪽 염색법을 배우는 문하생이 없어 홀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화재로 인해 그 동안 수집해 둔 많은 자료들이 사라져 안타까운 마음에 빨리 이를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연구에 대한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 경상남도 숙련기술인 최고장인 영예

 2012년 중국 청화대학교 초청 국제직물염색 대전에 참가하면서 우리 쪽 염색의 우수성을 대외에 널리 알린 계기를 만들었으며 당시 세계적인 행사에 중국 고위 간부들이 많이 참석하였으며, 중국 정부에서도 이 행사에 많은 공을 기울였다는 후문이 있다. 2013년 제 11회 대한민국 공예예술대전 대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하였으며, 2014년 경상남도 숙련기술인의 영예인 경상남도 최고 장인으로 선정되어 우리의 소중한 유산인 쪽을 알리는데 많은 노력과 열정을 보였으며, 주요저서로는 ‘쪽물의 신비’를 비롯한 3종과 쪽물 제조방법 및 숙성 장치에 대한 특허를 보유(특허-제10-0420990호), 한국을 빛낸 인물 대상(문화부문) 등 쪽염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 쪽은 모든 색의 대표색이다

 쪽은 모든 색을 대표한다. 색이라는 개념은 서구식 교육에서 칼라, 즉 색깔 그 자체를 색으로 규정하나, 불교의 경에서는 색은 물상적이고, 포괄적이며, 모든 것을 표현한다. 부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을 색계라고 정의했는데 이 ‘색’이 바로 쪽의 색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우리가 많은 정체성을 잃은 것 같다. 라고 쪽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고담의 작품에는 가람색과 자하색이라는 것이 있다. 가람색(伽藍色)은 쪽에 불교는 하나로 생각된다. 가람의 색은 연한색부터 아주 진한색까지 불교교리에는 쪽은 하늘 색, 공의 색, 색과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고, 자하색(紫霞色)은 해질녁에 서쪽하늘에 어쩌다가 일어나는 자연현상인데 보통 저녁노을은 붉은색인데 자하라고 하면 보라색 노을을 말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불교에서는 아주 성스러운 정토 세계요, 극락의 세계라 한다”며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에 대한 방향을 밝혔다. 그는 요즘 틈이 나는 데로 쪽에 대한 책을 집필 중에 있으며, 1988년에 ‘금강경각론’과 그 이후 사찰음식 연구소를 1기로 수료하면서 ‘사람의 먹거리’를 책으로 집필, 출판하였다.

 ♤ 전통의 계승 발전을 위한 물질적·정신적 도움 절실

 이젠 고담 김광수 최고장인도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절박한 바램이 있다면 고담쪽물협동조합에서 하는 쪽물 전통성을 계승하기 위해 농사, 재배, 가공, 교육체험활동, 자신이 개발한 약쑥·쑥뜸 기구의 개발, 보급 등을 지자체에서 지원해 줄 것과 온 국민의 관심과 격려, 지원 등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특히 쪽풀은 한 해만 씨를 받는 것을 넘겨도 발아가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해 농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전했다.
 오늘도 이 땅에 쪽빛 세상을 꿈꾸며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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