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소리] 전자발찌, 이제는 좀 달리 생각하자

  • 입력 2015.05.06 14:27
  • 수정 2015.05.06 14:28
  • 기자명 /창원보호관찰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 요즘처럼 안전이라는 단어가 간절한 시대가 있었을까? 물론이다. 인류 역사 자체가 나와 내 가족들을 위협하는 온갖 것들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로 우리는 민주주의를 꽃 피우고, 사회적 합의 위에 우리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법적 장치를 만들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전자발찌 역시 그렇게 등장했다. 성범죄의 재범률이 유난히 높은 데다 온 사회를 경악케 한 아동·미성년자 성폭행이 연이어 터지면서, 인권침해나 기술적 한계 등 여러 논란 속에서도 지난 2008년 9월부터 전자감독 제도가 시행된 것이다.

 그리고 살인·강도·미성년자 유괴사범 등으로 그 대상을 확대하는 한편 제도 시행 이전의 성범죄자들에게까지 소급해 전자발찌를 부착하는 등 그 영역을 확대해 왔다.(2012. 12. 27. 헌재 합헌 결정)

 그럼 그 성과는 어떠한가. 제도 시행 전후 5년의 성범죄 재범률을 놓고 볼 때 14.1%에서 1.7%로 재범률이 급감했고, 살인은 단 한건도 동종 재범이 발생하지 않았다.

 여타의 범죄행위와 관련해서도 대상자의 이동경로가 기록에 남아 있기 때문에, 보호관찰소와 경찰관서가 협력해 피의자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대상자의 범죄동기가 위축되고,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대상자가 무조건 용의선상에 오르는 일도 피할 수 있게 됐다.

 두 기관간의 공조 체계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공유를 통해 공고해졌고, 반기 1회 이상의 정례 협의회를 통해 한층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그 성과를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전자발찌 대상자가 발찌를 훼손하거나 재범을 하게 되면 매스컴이 온통 그 얘기로 떠들썩하고 전자발찌 무용론이 터져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 ‘보호관찰소에는 전자발찌를 찬 흉악범들이 오기 때문에 우리 동네에 있으면 안 된다’며 안전을 위해 노력해온 기관을 내쫓으려 하거나 받아주지 않으려 반대 한다.

 실상 보호관찰소를 방문하는 대상자의 절반은 한창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이고, 나머지 절반은 교통사범, 생계형 범죄자 등 내 이웃의 가장이거나 우리의 관심이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사법체계는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흉악범들을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사회로 내보낼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

 전자발찌 제도 시행 후 7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점이다. 우리 사회를 지키기 위한 가장 선진화된 시스템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만큼, 시행착오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부각되면 호된 질책을 해왔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조금 더 나아가 보는 게 어떨까. 우리가 그토록 민감한 전자발찌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집행하는 보호관찰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부터 되짚어 보면 좋겠다.

 적어도 나와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를 막연한 불안감으로 멀리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범죄인을 다시 건강한 우리 이웃으로 돌려놓는 일, 전자발찌와 보호관찰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뒷받침 된다면 반드시 이뤄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 창원보호관찰소책임관 허강무
▲ 창원보호관찰소책임관 허강무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