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섬진강가의 빨간지붕

녹차밭 속에 있는 유럽식 집 조화 이뤄

  • 입력 2006.05.03 00:00
  • 기자명 이현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녹차 밭에 곤줄박이 새가 알을 깠다. 새집이 녹차 덤불의 깊숙한 곳에 있었다. 새가 새집을 짓고 알을 세개나 깔 때까지 전혀 몰랐는데, 3일 전에 배외순(75)씨가 녹차 잎을 따면서 새집을 발견했다. “오늘 아침에는 새 알이 몇 개인고?” 덤불을 헤쳐 보니 이놈이 알 하나를 더 까고 갔다.

합쳐서 여섯 개다. 하루에 한개씩 매일 알을 깐 셈이다. 우리가 새집을 새알을 헤아리고 있는 동안 곤줄박이새는 어디에선가 자기 집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다. 멀리서 새소리가 들린다.





곡우 전에 나오는 차를 우전차라 하고 곡우를 지나 5월 중에 나오는 차를 세작이라고 한다. 차나무는 1년 내내 이파리를 드러내고 있는 상록수인데, 봄에 갑자기 핀 찻잎이 자랐다면 얼마나 자랐겠는가. 지금의 찻잎은 세작이다. 참말이지 참새 혓바닥만 하다. 그래서 작설차라고 한다.

참새 혓바닥만한 찻잎을 한 바구니 따야 우전 차 한 통을 만들 수 있다. 생잎을 덖고 말릴 때까지 찻잎은 보통 10분의 1정도 줄어든다. 배씨는 숙달이 되어서 하루에 1kg 정도의 찻잎을 채취 할 수 있지만, 그녀의 딸 이덕아(48)씨의 경우라면 열흘정도 꼬박 일해야 할 수 있는 분량이다.

차를 대량으로 생산해야 하는 제다원에서는 찻잎을 많이 채취하는데 차 나오는 철이 되면 일손이 모자라도 보통 모자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동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고, 대체로 구례에 가서 인부들을 데리고 와야 할 형편이다.

배씨는 차를 연간 100통 정도 만들어 낸다. 배씨의 차는 판매할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할 선물용으로 만든다.

배씨가 만드는 것이 차만이 아니다. 고추 장아찌가 인기 있다. 집에서 무공해로 직접 생산한 고추와 전라도 장수에서 가져온 특별한 간장으로 만든 장아찌도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만 전달되고 있다. 그래서 배씨 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순전히 반찬거리나 차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이지만, 배씨 가족의 후덕한 인심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인심이 훈훈한 집이다. 배씨 집 앞을 지나면서 전혀 초면일지라도 “지나가는 길손인데, 밥이 있으면 ...”하고 동냥질을 한다면, 흔쾌히 팔을 벌여 맞이할 집이다.

배씨의 집은 4년 전에 지었다. 집은 초원의 언덕에 있으면서 섬진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배씨의 의도대로 흐르는 강을 보며 지은 것이다.
청청한 섬진강 물 빛깔과 푸른 초원 사이에는 어떤 색깔이 어울릴까. 언덕 위에 하얀 집? 처음 집을 지을 때 배씨는 고민을 많이 했다. 다행히 사위의 직업이 건축사라 건축주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구도를 그려가며 집을 지을 수가 있었다.

언덕 위에 하얀 집이 좋긴 한데, 하얀 집은 너무 흔하다. ‘전원주택은 하얀 집이다’는 등식을 생각할 정도로 목조주택이나 스틸하우스 그리고 샌드위치 판넬집에 이르기까지 집들이 온통 하얀 색이라 하얀 집은 식상한다. 배씨의 집도 일단 하얀 집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섬진강이 보통으로 그냥 넘길 강이 아니다. 집이 기대고 있는 산은 또 지리산이다. 벽체는 하얀 색이지만 지붕색깔은 빨갛게 그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빨간 고추 색을 생각했지만 마침 그 색깔이 없어서 주황에 가까운 색깔을 칠했다.

지붕색깔 때문에 주변에서는 ‘빨간지붕’ 집으로 통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빨간지붕’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도 “화개장터로 가다가 보면 그 빨간 지붕 있지 않나?”라고 말하면 누구에게나 통한다.

집은 콘크리트 건물이다. 박공지붕까지 콘크리트로 부어 만들었다. 일층에 부엌과 거실 그리고 배씨의 방 그리고 객실이 있다. 실내계단을 통해 2층에 올라가면 딸 부부의 침실과 서재가 있다. 서재는 유럽식으로 침실을 통해서 들어 가게 되어 있다. 집 전체가 유럽분위기를 자아낸다. 집은 경남도에서 아름다운 건축으로 선정되었다. 이 집을 구경하고는 건축사인 사위에게 의뢰해 지어진 집이 구례와 하동 등지에 몇채 있다.

특히 이 집의 2층 창문을 통해 보는 전경이 아름답다. 차밭이 보이고 저수지가 보이고 강이 보이고 강 건너 산간마을이 보인다. 집주인은 이 마을을 가리켜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고 부른다. 눈 내리는 겨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붙인 이름이란다.

겨울 뿐만이 아니다. 가을에는 강가에 낮게 깔려 있는 황금빛 들판이 아름답다. 가을에 반짝 반짝 빛나는 강물은 형언할 수 없다. 여름 강은 비올 때가 극치이다. 봄에는 국도변으로 핀 벚꽃과 강 건너 샤갈마을에 핀 매화가 아름답다.

배씨가족은 배씨 외에 딸 부부가 있다. 식구 셋이 함께 살고 있다. 사위가 하는 건축사일은 부동산 경기가 하락하는 통에 많이 어려워졌다. 딸은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섬진강과 지리산사람들’이라는 하동지역의 환경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환경단체는 지금 국도 19호선의 확장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배씨의 딸 이덕아씨는 “섬진강을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도로가 파괴되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오늘 낮에 배씨네 집에 전화를 걸었다. “배여사님. 곤줄박이 새집에 새 알이 몇 개로 늘어났습니까?”

“아직 6개인데 더 이상 낳지 않을 것 같아.”

이현도기자 yhd@jogan.co.kr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