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예수님 오신 날에

  • 입력 2015.12.23 18:57
  • 수정 2015.12.23 19:28
  • 기자명 /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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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하루 한시 한 날도 시험대에 오르지 않은 시간과 날이 없다. 태어나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시험의 연속이다. 성경의 야보고서 1장 14~15절에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해 죄를 낳고 죄가 성장한 즉 죽음을 낳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실천한 것은 부유하고 권력을 쥔 자들을 위한 설교가 아니라 핍박받고 소외된 자들에게 희망을 대신 전해주는 메시지였다. 생선 몇 마리로 기적을 베풀어 수천 명을 먹였다는 것은 그 시절의 시대상황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각자도생의 삶을 살던 인류가 집단으로 조직사회로 진화하면서 그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지도자가 필요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과 무리를 이끄는 자들은 특별한 지위를 지니게 됐다. 그것이 권력과 부유함이다. 곧 기득권자와 피 기득권자로 나뉘면서 인류의 분쟁은 시작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사회적 혼란은 이처럼 수천 년 전부터 관습처럼 내려온 것일 뿐 새로운 지각변동이나 고착된 사회적 모순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내부를 성찰해 선악을 분별하는 자기정돈보다는 남의 탓하는 타류적(他類的) 사고방식에 젖어있기 때문에 눈이 눈을 보지 못하듯 자기가 무슨 행동을 취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다, 이런 천착에 떨어진 의식들이 세력화된 것이 사회악이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종과 종교와 사상 때문에 벌어지는 잔혹한 살상은 예견된 것이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던진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답을 주지 않았다. 답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네 스스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고 정답은 네 스스로가 지니고 있다는 뜻과 일치한다. 성인이 태어나 인류를 이끌던 시절은 언제나 사회악이 절정에 달해 혼용무도(昏庸無道)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석학들이라는 교수들이 내년 병신년(丙申年)을 예견하는 사자성어를 ‘혼용무도’로 예언한 것은 그들도 우리 시대를 가장 혼용무도하게 만든 교육자들이라는 사실을 쏙 빼고, 모든 잘못을 국가원수와 사회지도층에게만 책임을 돌린, 도둑이 오히려 매를 드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과 어찌 그리도 잘 맞아떨어지는지 모르겠다.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책임은 첫 번째는 가정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부모의 탓이고, 둘째는 제자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스승의 탓이며, 세 번째가 국가운용을 책임진 정치지도자들의 탓이다. 그리고 네 번째로 가장 큰 탓은 그 세 가지가 혼용돼 인류와 국가와 사회가 어지러울 때 바로잡아주어야 할 종교가 제 몫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혼용무도한 짓이다.

 예수님이 평생 지니신 것은 헤진 누더기 옷에 지팡이 하나뿐이었다. 그런데도 오늘 날 우리 주변의 사원들과 성직자들의 모습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 찾고 의지하고픈 안식처와는 너무 먼 신기루처럼 보인다. 예수님의 진리는 광야에서 설해졌고 부처님의 진리는 들판에서 행해졌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범죄 중 공직사회와 교육계 내부에서 발생하는 범죄행위가 상위권에 속한다는 것은 사자성어를 만든 교수들이 눈을 손으로 가리고 “야옹!”하는 소리와 별 다를 게 없이 혼란스러워 보인다. 물러서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 될 때가 있다. 모든 국가사회의 혼용은 서로가 양보 없이 이전투구 할 때 생기는 현상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는 말인가?

 ‘고린도전서’를 읽어보면 천당으로 가는 길은 자신의 길을 올바로 찾는 것이며 영광은 상대를 구원하는 마음을 가질 때라야 얻는 것이라고 적혀있다. 황금이 작고 크건 고귀하듯 그리스도께서 설하신 말씀은 성경의 자구 하나하나가 이처럼 황금처럼 고귀한 것이다.

 인간의 건강이 기름진 육식으로만 지탱되는 게 아니라 고른 식단에 있듯 건전하고 희망을 주는 사회는 예수님의 거룩한 가르침처럼 서로를 구원하고 영광을 타인에게 돌리려는 마음이 가난한 자들로 인해 이룩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성탄전야다.

 국가는 국가원수 한 사람이 운영하는 게 아니라 국민모두가 국민스스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 다 하지 못할 때 흥망성쇠로 갈라지는 것이다. 새해 병신년에는 모든 국민과 우리 경남도민들, 독자 분들께 예수님의 은총이 가득 하길 바라며 ‘혼용무도’가 아닌 건양다경(建陽多慶)함이 깃들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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