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다시읽는 "러브레터"

  • 입력 2006.04.14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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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피고 지고 봄비가 잦아지는 계절이 오니, 일본의 젊은 영화감독 이와이 슌지가 만든 달콤한 연애만화 같은 영화가 생각납니다.
영화 '러브레터'에는 서로 사랑하는 세 남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히로코는 2년 전 등반사고로 목숨을 잃은 연인 후지이 이츠키의 추모식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그의 중학교 졸업앨범을 보게 됩니다. 그녀는 거기서 이츠키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오타루의 주소를 옮겨 적고 결코 배달될 리 없는 편지를 보냅니다.


'잘 계신가요? 저는 잘 있습니다. 와타나베 히로코'
그런데 놀랍게도 한통의 답장이 배달됩니다.
'저는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있습니다'
히로코는 생각지도 않았던 답장에 놀라지만, 이츠키가 천국에서 보낸 걸 거라 여기고 행복해 합니다. 이츠키의 친구이자 히로코를 사랑하는 아키바는 히로코의 환상을 깨기 위해 '또 다른' 이츠키를 만나러 함께 오타루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히로코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죽은 이츠키의 중학교 동창 이츠키를 보게 됩니다.


소년 후지이 이츠키와 소녀 후지이 이츠키는 단지 이름이 똑 같다는 이유 때문에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고, 도서부에 함께 배치되기도 하고, 시험지가 뒤바뀌는 등 여러 사건을 겪었습니다. 특히 소년 이츠키는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의 독서카드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는 장난을 즐겼어요. 이츠키는 학교에서 도서정리를 하고 있던 학생들로부터 그의 이름이 적힌 독서카드를 찾는 게 유행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이츠키가 2년 전 등반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충격을 받게 되지요.


어느 날 학교에서 도서부 학생들이 찾아와 소년 이츠키가 전학 가기 전에 자신에게 건넸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전해 줍니다. 이츠키는 뒤늦게 독서카드 뒷면에 그려진 자신의 얼굴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소년 이츠키가 자신을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소년 이츠키가 소녀 이츠키를 사랑하는 방식은 참 독특했습니다. 그는 늘 다른 학생들이 잘 빌리지 않는 책만 골라 독서카드에 자기의 이름을 써넣었습니다. 자기의 이름이자 사랑하는 소녀의 이름이기도 한 '후지이 이츠키'라고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제일 먼저 하게 되는 일이 무엇인가?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사랑하는 그(녀)의 이름을 입으로 외며 손으로 쓰는 일이 아닐까요? 내 책상 위에, 빈 노트장에, 내가 앉고 서는 모든 장소에, 그 또는 그녀의 이름을 써 넣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나의 마음에 그(녀)의 이름을 새겨 넣는 행위이기도 해요. 사랑은 그런 것이지요. 나와 상대가 언제나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것.


'러브레터'는 사랑에 관한 영화입니다. 이와이 슌지는 이 영화에다 자신의 사랑에 대한 철학을 그려 넣었습니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소녀 이츠키를 사랑한 이츠키와 이츠키를 사랑한 히로코, 히로코를 사랑한 아키바를 만나게 됩니다. 이들의 사랑은 하나의 줄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고리처럼도 보이고, 그 고리는 또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점이 묘연하기도 합니다. 결국 그가 말하려는 것은 '모든 사랑은 하나'라는 명제로 정리될 듯합니다.
4월입니다. 사랑을 이야기하기에 적당한 계절이지요.
(창원대 외래교수,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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