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만델리슈텀의 절규

  • 입력 2016.08.29 14:58
  • 수정 2016.08.29 15: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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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필 김소봉
▲ 주필 김소봉

 1934년 스탈린을 인민을 팔아 노예로 만드는 산적(山賊)이라고 공공연하게 비난하며 스탈린의 애찬론자로 보수파의 지식인이었던 톨스토이의 뺨을 후려갈긴 후 악명 높은 사상경찰 ‘게페우’에 끌려가 정확한 생몰연대조차 오리무중인 당시 소비에트 최고의 지식인으로 존경받던 진보파의 지식인 ‘만델리슈텀’이 살았던 비참한 시대상과 대한민국의 2016년은 너무나 닮은꼴이다.

 얼마 전 창원시 진해구 안민터널 앞 고층 건물에 이런 긴 현수막이 내걸렸었다. ‘신 창원 팔각회’라는 단체에서 내건 것으로 ‘사드를 반대하면 종북(從北)주의자’라는 이념성이 다분한 끔찍하고 전율이 느껴지는 경고성 문구였다. 좀 시각을 넓게 해석하면 정부정책을 반대하면 모두 빨갱이라는 선동과 다를 게 없다. 사드설치에 반대하거나 신중론을 피력한 국민들과 성주 군민들은 모두 빨갱이인 종북주의자라는 말인데 그 현수막을 쳐다보며 건널목 앞에 서 있던 사람들 입에서 나온 응답들은 지지가 아니라 팔각회라는 단체를 향한 험한 욕지거리뿐이었다.

 사드문제는 안전한 장소로의 배치를 정부와 지자체인 성주군과 협의가 잘 이뤄지고 있다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적의 공격에 방어할 무기가 없다면 그 전쟁은 백전백패다. 거북선과 천자총통을 개발하지 못했다면 불멸의 이순신 장군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최근 중앙정부나 광역 시도와 기초자치단체가 벌이는 님비현상도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며 국민들이 심사숙고해봐야 할 문제들이다.

 결국은 돈, 즉 말은 좋지만 민선단체장의 당선과 지자체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위해선 국가도 필요 없다는 얘기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사드배치 문제를 어렵게 만든 단초는 정부가 해당 기초자치단체와 일말의 협의도 없이 강제성을 띤 안보논리 때문에 생긴 것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중앙정부라는 갑질 논리만을 내세운 실정(失政)이 문제를 크게 만들고 이해상충으로 무덥고 긴 이 여름에 국민 불쾌지수만 더 상승하게 만들고 만 것이다. 대한민국은 정당한 결사와 비판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된 민주국가다.

 또한 2016년 여름은 서민들에겐 내년 여름이 또 올까봐 미리 걱정하는 공포감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도 일반 주택에만 부과하는 악세(惡稅)중의 하나인 11등급제 누진제라는 전기요금을 조절하겠다며 정부와 국회가 나선지가 오래됐으나 관청과 국회는 청사 내에 시원한 에어컨을 종일 틀고 있으니 국민들이 흘리는 저 비오는 듯 흐르는 땀이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이다. 사드문제보다 더 시급한 국민안보는 악세로부터 국민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이런 시절이면 떠오르는 명구가 하나 더 있다. 공자님께서 겪은 일화로 선생이 산길을 가는데 무덤 앞에서 여인이 슬피 망곡하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여인 왈 “시아버지와 남편과 아들 3대가 모두 호랑이에게 죽었습니다.” 왜 그렇다면 하산해 몸을 피하지 않느냐? 라고 물으니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게 탐관오리들이 착취하는 세금입니다.”라고 했다. 예기(禮記) 단궁편(檀弓篇)의 하편에 나와 있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를 풀이한 것이다. 지금 정부나 한국전력의 ‘서민 죽이기 정책’이 가정맹어호라는 고사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정책의 선후 분별을 못하는 행정부와 입법부는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사드배치도 세계 최대의 주변강대국인 중국과 소련이 극력 반대하는 마당에 사드가 배치된다고 해도 완벽한 방어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일부군사전문가들의 평과 사드보다 잃는 게 더 많다는 일부 경제학자들의 우려도 심도 있게 판단해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의 생존은 수출에 무게가 더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델리슈텀은 ‘스탈린 에피그랄’이라는 시를 썼고 그의 삶도 유형지에서 마감했다. 그가 외친 공산주의의 괴수인 스탈린을 향해 쓴 시를 들어보자.

 “우리는 살아간다. 자신 속에 국가를 느끼지 못하면서. 우리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열 걸음 앞에서도. 혀 짧은 소리로 지껄여대는 자리에선 크레믈린의 산적(山賊)을 생각한다(중략)” 그가 선 법정에서 판사의 손에든 판결문은 오직 이 시 하나 뿐이었고 그는 스탈린을 산적이라고 부르짖으며 당당하게 죽음으로 가는 통로로 걸어 나갔다.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건 북한의 핵탄두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시급한 건 현재 국민이 겪고 있는 생활고의 고통이다. 인체 온도보다 더 뜨거운 시골 방에서 누진제 때문에 선풍기도 제대로 틀지 못하다 죽어간 소외계층들을 기억하라. 이런 상황이면 북한과 우리와 뭐가 다른가? 그리고 공산주의에 끝까지 저항하다 숨진 만델리슈텀의 절규도 귀담아 들어보라.

 안보와 국민생존권은 표리로 얽혀있다. 명운이 걸린 사드배치 같은 문제에는 지역이기주의를 떠나 시급한 안보문제에 협조하는 주인다운 성숙함도 보여줄 때가 됐지 않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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