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3·15의거’와 ‘4·19혁명’ 이름 똑바로 불러라

  • 입력 2006.04.18 00:00
  • 기자명 이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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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빅셀이 쓴 단편 ‘책상은 책상이다’는 무료한 삶의 변화를 기대하는 한 노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설 속의 노인은 눈에 보이는 사물의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노인은 침대를 그림이라 부르기로 하고 “나는 피곤하니 그림으로 간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걸상을 시계라고 명명했다. 노인은 일어나 옷을 입고 시계에 앉아 팔을 책상에 괴었다. 또 책상을 양탄자라 불렀다. 아침에 노인은 그림을 떠나 옷을 입고 양탄자 옆에 있는 시계에 앉아 무엇을 어떻게 부를까 숙고했다. 노인은 매일 이렇게 해서 만든 새로운 언어로 가끔 꿈을 꾸었고, 학교시절의 가곡을 그의 언어로 번역해 나직이 혼자서 불렀다. 차츰 소설의 노인은 번역하기도 어렵게 되었고 예전에 사용하던 언어를 거의 잊어버렸다. 또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이웃으로부터 고립됐다.

경남대 박태일 교수는 지난 14일 열린 3·15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3·15 의거’를 ‘경자마산의거’로 고쳐 불렀다. 미리 배포된 책자를 보기 전에는 ‘경자마산의거’라는 말이 혼돈스러웠다. 처음에는 3·15 의거 말고 또 다른 사건이 있었나하고 의아해 했다. 이러한 혼돈스러움은 기자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청중 속에는 “경자마산의거와 3·15의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서로 묻는 경우도 보였다. 도대체 경자마산의거가 무엇인가?

박교수에 따르면 경자년에 일어난 마산의거라는 의미이다. 경자년은 1960년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경술국치라고 하듯이 3·15 의거도 이러한 간지전통에 따라 경자마산의거이다. 그래서 4·19혁명은 경자시민혁명이고, 6·25전쟁은 경인전쟁이다. 경인전쟁이라니? 한자로 쓰지 않고 한글로만 읽는다면 경인전쟁은 읽기가 모호하다. 혹시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쟁이라도 일어났단 말인가?

박교수 만이 명칭을 달리 부른 것이 아니다. 마치 합의라도 한 것처럼 이날 나온 발표자 모두가 그렇게 불렀다. 선인들이 오랜 세월 따랐던 간지전통을 역사용어로 쓰겠다는 박교수의 발상은 기발하다.

하지만 지금이 간지를 쓰는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 같다. 그의 용어사용은 마치 양복시대에 갓을 쓰자는 말과 같다.

물어보자. 올해가 병술년이라고 해야 이해하기 쉬운가. 2006년이라고 해야 이해하기 쉬운가. 6·25 전쟁이 일어났던 해를 경인년이라 하고, 3·15나 4·19가 일어났던 해를 경자년이라고 한다면, 1950년과 1960년을 쉽게 산술해낼 수 있는가? 더욱이 간지세대가 아닌 우리 후손들이 그 연대를 기억해야 한다면 어느 것이 그들이 기억해내기 쉬운가? 4·19가 46년 전의 일이 아니라,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처럼 간지를 쓰던 시대의 까마득한 일로 생각하기 쉽다. 오히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이라고 쓴 간지를 요즘 시대에 맞게 서기연도로 고쳐쓰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사회적인 합의없이 만들어진 ‘경자마산의거’는 소설 속 노인의 노트에 적힌 낱말처럼, 이 날 발표자의 노트 속에서만 기록되어야 할 용어였다. 공인되지 않은 이 용어가 3·15기념사업회가 의거 46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된 이유를 모르겠다.

김종배 3·15 기념사업회 회장은 심포지엄 초대인사를 통해 “역사의 뒤안에서 폄하되고 시민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져 가는 3·15 마산의거의 참뜻을 되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3.15 기념사업회에 묻고 싶다. 마산시민은 어디에서 3·15 마산의거의 참뜻을 되살릴 수 있는가? 경자마산의거인가, 3·15 마산의거인가? 똑바로 된 이름에서 똑바로 된 참뜻이 있다. 사람들에게 헷갈리게 만들어 놓은 이름 속에 무슨 참뜻이 있겠는가.

이날의 심포지엄은 ‘책상은 책상이다’ 속의 노인들이 모인 자리같았다. 그 노인이 그날의 발표자들이었는지 혹은 청중들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현도 / 탐사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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