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부행위의 정치를 넘어

  • 입력 2016.12.0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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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에는 중세 봉건시대부터 내려오는 유명한 속담 하나가 있다. 

 그 사람의 빵을 먹으면, 그 사람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Wessen Brot ich ess, dessen Lied ich sing.)
 

 영주의 토지에서 일군 밀을 빻아 만든 빵(Brot)을 먹게 되면 노래(Lied)마저 영주의 구미에 맞춰 부를 수밖에 없는 법, 봉건영주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 채 삶을 연명해 나가야 하는 농노들은 결국 영주의 세계관과 이해에도 예속될 수밖에 없음을 이 짧은 속담은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오래된 속담이 사라지지 않고 현대에도 많은 독일인들이 일상적으로 인용하고 사용하는 데에는 그 함의가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성에 닿아 있어서일 것이다. 

 시선을 돌려 지금 우리의 정치현실을 바라보자. 정치인들이 엄격한 법적 금지와 처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와 관련된 매표(買票)행위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은 유권자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유권자의 선거에서의 의사결정과 표현(投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씁쓸하게도 중세 독일 속담이 일러주는 교훈이 우리의 정치와 선거현실에서도 여지없이 관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거를 게임으로 본다면 이 경기의 규칙에 해당하는 공직선거법(이하 선거법)에서는 정치인(국회의원, 지방의원, 지자체장, 정당의 대표자 등을 포함 각종 선거의 후보자 및 입후보예정자등을 망라한다)이 선거구민 등에게 금전·물품 기타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약속하는 행위를 상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치인들의 금품 제공행위를 ‘기부행위’로 명명(命名)하면서 일부 예외적 사항을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정치인으로부터 제공되는 금전·물품 등을 제공받는 행위 역시 처벌의 대상이 됨은 물론이다. 

 지난 2014년 6월에 실시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선거범죄 관련 통계를 보면 아직도 우리 정치에서, 특히 선거에서 불법 기부행위가 얼마나 만연한지 알 수 있다.

 같은 선거와 관련해 발생한 전체 선거범죄 3725건(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 처분 등 행정조치 포함) 중 기부행위가 1070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여전히 빈번히 발생하고 있고, 특히 경남도를 기준으로 살펴봐도 경남지역에서 발생한 전체 선거범죄 421건 중 기부행위만 131건으로 선거범죄 유형 중 최다 건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쯤 되면 비록 불법이긴 하나 기부행위가 하나의 정치 행태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할만하다. 이른바 ‘기부행위의 정치’가 근절되지 못한 채 온존하면서 선거과정 전반과 그 결과를 왜곡하고 우리 정치의 발전을 그 근본부터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기부행위를 중대선거범죄로 규정해 집중단속 대상으로 삼고 있고 선거법의 벌칙규정 역시 여타 선거범죄에 비해 기부행위 위반 범죄에 대해서는 중한 법정형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기부행위가 감소되기는커녕 모든 공직선거마다 선거범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은 기부행위의 근절이 법·제도적 차원의 제재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방증한다. 즉, 대한민국이란 공동체의 주권자인자 유권자인 국민 모두가 정치적으로 각성하여 정치인의 불법 기부행위를 거부함으로써 ‘기부행위의 정치’를 넘어설 때 기부행위의 근절은 가능할 것이다.

 모쪼록 내년에 실시되는 제19대 대통령선거와 뒤이어 2018년 치러지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모든 유권자들이 정치인이 제공하는 빵의 유혹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정치적 신념을 통해 선택한 자신의 노래를 신명나게 부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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