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의 神’ 제프 벡, 거장이 들려준 품격

22일 서울 올림픽공원서 ‘잘 익은 소리’ 한껏 울려
솔리스트 아닌 밴드 멤버로 로지 본즈 등과 호연

  • 입력 2017.01.23 16:55
  • 수정 2017.01.2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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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프 벡, 영국 기타리스트(사진=프라이빗커브)
▲ 제프 벡, 영국 기타리스트(사진=프라이빗커브)

 제프 벡(73)에게 목소리는 기타다. ‘빅 블록(Bic Block)’에서 가장 다양한 목소리, 즉 여러 색깔의 기타 연주를 들려줬다.

 성악으로 따지자면 저 밑 성부의 베이스부터 고음의 카운터 테너를 자유자재로 오갔다. 짧은 공백은 숨을 쉬는 호흡과 같았다. 노련한 소리는 물론 젊고 생생한 목소리도 곳곳에 깃들었다.

 자신과 함께 ‘합창하는’ 기타, 베이스, 드럼의 목소리도 경청하며 자유자재로 볼륨을 조절했다.

 ‘살아 있는 기타의 신’으로 통하는 기타리스트 제프 벡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그 신의 경지를 보여줬다.

 TV에서는 여심을 사로잡은 찬란한 신(神)인 ‘도깨비’가 전날 활약을 끝냈지만, 무대 위 기타 신은 찬란한 연주를 선보였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늙지 않은 기교와 연주, 열정을 뽐낸 제프 벡은 오히려 젊으면 내기 힘든 ‘잘 익은 소리’까지 아울렀다. 솔로 활동을 시작한 지 50년, 어느덧 반세기 동안 ‘숙성된 솔풀한 소리’였다.

 진한 블루스 풍의 ‘코즈 위브 엔디드 애스 러버스(Cause We’ve Ended As Lovers)’가 증명했다. 제프 벡은 이 곡에서 기타 연주로 묵직하지만 무겁지 않고, 서정적이지만 감상적이지 않은 균형 감각이 절묘한 위로를 들려줬다.

 지난 2010년 첫 내한공연 이후 2014년에 이어 2년 9개월 만에 3번째 내한한 그는 이처럼 일부러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품격을 자아내는 거장으로 한층 더 자리매김해 있었다.

 ‘프리웨이 잼’의 질주감, ‘라이브 인 더 다크’의 강렬한 그루브, ‘스케어드 포 더 칠드런(Scared For The Children)’의 부드러움, ‘리틀 브라운 버드(Little Brown Bird)’에서 재즈보컬의 스캣 같은 연주, 곡 중간에 베스트까지 벗어 던진 스티비 원더 커버 곡 ‘수퍼스티션(Superstition)’의 화끈함 등 어느 정서와 분위기도 그는 빠져들었다.

 시작부터 확성기를 들고 제프 벡의 새 앨범 ‘라우드 헤일러(Loud Hailer)’ 수록곡 ‘더 레볼루션 윌 비 텔레바이즈드(The Revolution Will Be Televised)’를 다크 초콜릿 같은 목소리로 섹시하게 불러 젖힌 밴드 ‘본즈’의 로지 본즈를 비롯한 이날 함께 한 밴드 멤버들도 호연했다.

 ‘본즈’의 또 다른 멤버로 짧은 머리카락이 보이시한 기타리스트 카르멘 반덴버그, 어느 남성 팬의 환심을 가득 산 베이시스트 론다 스미스, 땀으로 뒤범벅이 된 드러머 조나단 조셉, 걸쭉한 보컬을 자랑한 지미 홀이었다.

 제프 벡은 무엇보다 솔리스트로서가 아닌 밴드 멤버로서 복무했다. 멤버들에 대한 존중과 호흡을 중시하는 태도가 내내 묻어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곡이 ‘벡스 볼레로(Beck’s Bolero)’였다. 같은 멜로디가 수없이 반복되고 그것이 극적인 구성을 만들어내는 곡인 ‘볼레로’에서 착안한 이 곡에서 멜로디와 리듬 위에서 화려한 군무, 안정적인 독무를 오가며 안정과 유려함을 쉴 새 없이 선보였다.

 공연 시간 100분 동안 두 차례의 “감사하다”와 멤버 소개가 그의 멘트 전부였지만 보컬들의 끼 넘치는 무대에 ‘씨익’ 웃는 그는 누구보다 따듯했다.

 이날 마지막 연주였던 영국 록밴드 ‘비틀스’의 커버곡 ‘어 데이 인 더 라이프(A Day in the Life)’는 제프 벡의 삶에 대한 멋스런 관조와 여유였다. 곡이 끝난 뒤 공연장에 운집한 2000명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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