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첫째 날…황금같은 휴가, 황금같은 이집트

  • 입력 2017.03.05 18:08
  • 수정 2017.03.13 15:37
  • 기자명 /윤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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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로 람세스역의 밤풍경. 카이로에서 아스완으로 가는 슬리핑배드 기차를 타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서울역과 맞먹을 정도로 규모가 큰 역이었다.
▲ 카이로 람세스역의 밤풍경. 카이로에서 아스완으로 가는 슬리핑배드 기차를 타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서울역과 맞먹을 정도로 규모가 큰 역이었다.

 

세계 3대 문명 중 하나…오랜 세계문화유산·거리 자체가 박물관
첫인상? ‘모래색으로 칠해진 집들·좁은 도로·질주하는 차량들’

 

남여 다르게 줄선 역 매표소 인상적…외국인도 예외없어
파피루스·금속공예품·스카프 등 전통시장·모래사막 ‘눈길’

 

 서른이라는 나이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마음 속 깊은 곳의 울림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일어났다. 그래서 며칠동안 지도를 놓고 여기저기를 고민하다가 세계 3대 문명 중 하나인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낯설어 큰 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는 아프리카의 초입의 나라여서 황금같은 휴가를 투자하고 싶었다. 마침 대학 후배가 고고학을 배우기 위해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내 발걸음이 훨씬 가벼웠는지도 모르겠다.

 

 이집트는 수많은 역사책에서 언급됐듯이 오랜 문명의 흔적과 수많은 세계문화유산이 널려 있어 도시와 거리 그 자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인간의 손길이 닿은 모든 피조물은 모조리 우리의 박물관에 있는 유물의 역사와는 비교가 안되는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관광객들이 여행지로 쉽게 선택하지 않는 나라 중 하나이다. 나 역시 여행정보들을 찾으려고 여기저기를 뒤졌으나 북미나 유럽, 아시아 여행지와는 달리 이집트에 대한 여행정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집트 여행을 다녀온 외국친구들이나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는 지인, 이집트에서 공부를 하고 후배의 이야기만 듣고 여행 일정을 잡았다.

 

▲ 아스완역에서 찍은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승객들이 몰려있는 창구. 이곳은 이슬람 문화권이라 남자와 여자가 각각 다른 창구에서 표를 사야한다. 외국인도 예외일 수 없으며 다른쪽 창구에 사람이 없어도 줄이 침범할 수 없다.
▲ 아스완역에서 찍은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승객들이 몰려있는 창구. 이곳은 이슬람 문화권이라 남자와 여자가 각각 다른 창구에서 표를 사야한다. 외국인도 예외일 수 없으며 다른쪽 창구에 사람이 없어도 줄이 침범할 수 없다.

 

◈ 여행의 출발은 야간열차

 내가 있는 말레이시아에서 이집트까지는 직항로가 없어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공항(AUH)을 거쳐 이집트 카이로 공항(CAI)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35분이었다. 탑승한 Ethihad 항공기는 중저가 비행기임에도 기내에서 USB에 연결하는 충전기, 최신영화, 담요 및 안대 등을 무료로 제공했고, 비교적 큰 비행기라 이코노미 좌석임에도 꽤 편안했다. 그러나 이륙하기 전, 이슬람 기도음이 기내에 퍼지면서 히잡(얼굴만 남기고 머리카락을 감싸는 스카프의 일종)을 쓴 여성과 이슬람 민족이 모두 기도를 한다는 점이 새로웠다.

 

 카이로 공항은 국제공항치고는 작은 편이었다. 입국장은 3개로 돼 있고, 외교관이나 관용여권 소지자(비자비용 면제)를 제외한 일반인은 현장에서 비자를 받아야만 입국이 가능했다. 숙소로 이동하는 거리에서의 이집트 첫인상은 모래색으로 칠해진 집들과 좁은 도로에서 아슬아슬하게 질주하는 차량들이었다. 대중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반갑기는 했으나 여기저기 쉴틈없이 울리는 경적소리는 나를 금세 지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이집트 도심을 지나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숙소에 짐을 풀고 쉬었다가 곧바로 이집트 남부도시 아스완으로 향했다.

 

 카이로의 람세르 역에서 오후 8시 20분에 출발한 야간열차는 다음날 아침 10시 20분까지 장장 14시간을 달렸다. 그러나 외국인에게는 일반기차(의자에 앉아 타는 기차) 티켓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이해하지 못할 예매시스템 때문에 80달러를 추가로 지불하고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내가 이용한 2인용 슬리핑 배드는 조그만한 방에 의자 2개가 있는데 잠을 잘 때는 벽면에 고정돼 있는 침대를 펼쳐 사용토록 돼있는데, 값에 비해 시설이나 청결도는 우리나라의 KTX와 크게 달랐다. 굳이 새로움을 느끼기 위해 슬리핑배드를 선택한다면 정말이지 딱 한 번만 하라고 말하고 싶다.

 

▲ 카이로에서 아스완으로 가는 슬리핑배드 기차에서 차창밖을 구경하다 만난 미니버스. 작은 트럭을 개조한것으로 보이는 이 차량에는 20여 명이 탔고 승객이 넘치자 차량 뒤에 매달려서 가는 사람도 있다.
▲ 카이로에서 아스완으로 가는 슬리핑배드 기차에서 차창밖을 구경하다 만난 미니버스. 작은 트럭을 개조한것으로 보이는 이 차량에는 20여 명이 탔고 승객이 넘치자 차량 뒤에 매달려서 가는 사람도 있다.

 

◈ 아스완에서 시작된 관광

 그렇게 좁은 공간에서 14시간 동안 먹고 자다보니 다음날 아침 11시에 아스완 중앙역에 도착했다. 열차내에서 아침식사로 빵과 요거트를 줘서 허기만 달랬다. 호텔로 가기 전, 다음 목적지인 룩소르로 가는 티켓을 예약하기 위해 중앙역 매표소에 갔더니 표를 사려는 현지인들이 남자와 여자가 줄을 달리해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한 쪽 편에 사람이 없어도 남여의 창구는 엄격하게 나눠져 있었는데 외국인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역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한 ISIS호텔까지는 20여 분의 거리였는데 생소한 도시였지만 구글맵을 통해 걸어서 찾아 갔다. 이곳에서 아시아인이 낯설었는지 끼리끼리 웃으면서 힐끔힐끔 쳐다보다 몇번이고 눈이 마주쳤다. ‘니하오마’나 ‘고니찌와’로 말을 걸어오기도 했지만 ‘안녕하세요’라는 내 대답에 당황하는 눈치다. 우리가 서양 사람들을 구분하기 어렵듯이 그들 역시 아시아 사람들을 구분 못한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도 실감했다.

 

 나일강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정원을 낀 호텔의 첫 느낌은 나쁘지 않았으나, TV에서 보던 으리으리한 아랍권 호텔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펜션같은 규모였다. 야간열차를 타고 온 14시간의 피로를 풀 시간도 없이 필요한 물건만 챙겨 Old Bazaar aswan 전통시장으로 갔다.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는데 꽤 넓은 시장이었다. 말로만 듣던 파피루스(이집트 종이)가 즐비해 있고, 화려한 금속 공예품과 장식품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사막에서 없어서는 안 될 스카프는 그 재질과 색깔 등이 엄청났고 질감도 부드러웠다.

 

▲ 아스완의 Old Bazaar전통시장 입구에서 당나귀에 짐을 옮겨싣는 상인. 이곳에는 진귀한 물품들이 즐비한데, 아시아계 사람이 드물어 모두들 나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 정도였다.
▲ 아스완의 Old Bazaar전통시장 입구에서 당나귀에 짐을 옮겨싣는 상인. 이곳에는 진귀한 물품들이 즐비한데, 아시아계 사람이 드물어 모두들 나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 정도였다.

 

 집요한 이집트인들의 다양한 호객행위를 뿌리치며 시장 구경을 마친 후, 펠루카(무동력 배)를 타고 나일강을 구경하러 갔다. 오랜 흥정 끝에 1시간 30분을 이용하기로 하고 펠루카 1대를 계약했다. 여행 시작부터 느낀 것이지만 이곳 이집트 여행에서는 물건을 살때나 여행상품을 계약할 때 가격을 미리 협상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 특히 세계적인 관광지여서인지 호객행위가 어느 나라보다 심했고 가격 부풀리기가 예사여서 이를 소홀히 한 여행객은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펠루카를 타고 나일강의 바람을 쐬며 둘러본 아스완 시내의 경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푸른빛으로 가득한 나일강과 붉은색으로 덮힌 석양을 바라보니 14시간 동안 카이로에서 아스완으로 고생하며 내려온 수고를 씻기에 충분했다. 30분가량 이동하다가 갑자기 석양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가는게 아쉬워 강 반대쪽의 암굴분묘군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암굴분묘군은 강가의 바위언덕에 구멍을 뚫어 만든 무덤으로 과거 에레판토네섬을 지배했던 이집트 로마시대 귀족들의 묘라고 한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따로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나는 샛길이 있는 사막언덕을 걸어 정상까지 올라가 도시 전체를 구경 하기로 했다. 펠루카를 강 어귀에 기다리게 하고 걸어서 모래언덕을 걸었더니 부드러운 모래에 발이 빠져 걷기가 쉽지 않았다. 한걸음 오르면 반걸음은 밀리고 힘은 두 배 이상 들었다. 50m 가량의 모래언덕을 30여 분 동안 올랐으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방송에서 보았던 모래사막 등반가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기다리는 펠루카 때문에 더 오르지 못하고 모래언덕 중간에서 암굴분묘군과 언덕을 따라 위치한 아가한묘(이슬람 이스마일파의 최고 권력자를 지칭하며, 1959년 사망 후 부인이 세운 무덤)를 바라보며 당시 시대의 전성기를 머리속에 그려보다 내려와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 주 월요일에 계속…>

 

<이세원 약력>

이세원
이세원

 

 

 

 

 

 

 

 

 

 

 

 

 

 

* 여행기를 쓴 이세원은 1989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등학교와 경상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에 다닐때 교환학생으로 중국문화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졸업한 뒤 UN 산하 환경전문기구 UNEP에서 인턴사원을 경험했으며, 지금은 2015년부터 주 말레이시아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다. 대학 때는 휴학을 한 뒤 영국과 스페인, 프랑스, 스위스 등지를 자유여행한 뒤 기행문을 쓰기도 했고, 그 뒤 필리핀과 홍콩, 캄보디아 등을 여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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