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지막 날…안녕, 스핑크스! 안녕, 이집트!

  • 입력 2017.03.19 18:06
  • 수정 2017.03.19 18:15
  • 기자명 /윤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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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핑크스앞 포토존에서 스핑크스를 손으로 들어 올리는 익살스런 동작을 해 보았다. 이곳에도 한꺼번에 50여 명이 몰려 사진을 찍는데만 20분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 스핑크스앞 포토존에서 스핑크스를 손으로 들어 올리는 익살스런 동작을 해 보았다. 이곳에도 한꺼번에 50여 명이 몰려 사진을 찍는데만 20분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중세 모습 유지 중인 가장 매력적 관광지 칸 엘 칼릴리 시장
1500여 개 상점·대형 TV 크기 짙은 색 파피루스에 압도되다

고대하던 피라미드와 만남…관광객 향한 호객행위 ‘눈살’
바가지요금 등 개선해야·인류문명 발상지들 보존방안 필요

 

<지난주 월요일에 이어서…>

 ◈ 아직도 중세시대 모습의 카이로 전통시장

▲ 카이로의 칸 엘 칼릴리 전통시장. 우리나라의 남대문시장과 비슷한 규모로 카이로의 이슬람 지구에서는 가장 큰 시장인데 지금도 건물이나 도로 골목길 등이 중세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가장 매력적인 관광지다.
▲ 카이로의 칸 엘 칼릴리 전통시장. 우리나라의 남대문시장과 비슷한 규모로 카이로의 이슬람 지구에서는 가장 큰 시장인데 지금도 건물이나 도로 골목길 등이 중세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가장 매력적인 관광지다.

 오전 7시에 카이로에 도착해 숙소로 이동해 점심을 먹고나니 컨디션이 좋지 않다. 어렵게 기회를 얻은 이집트 여행에서 많은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 일정을 빡빡한 짰던것이 원인이겠지만, 날씨도 우리나라의 초가을 날씨와 비슷한데도 밤이면 한기를 느낄정도로 밤낮의 기온차가 심해 몸이 적응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무리한 여행 탓에 몸에 탈이 났다고나 할까.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숙소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저녁때가 돼서야 시장구경을 나갔다.

 카이로의 큰 시장인 칸 엘 칼릴리 시장까지 걸어서 갔다. 우리나라의 남대문시장처럼 큰 규모인데 카이로의 이슬람 지구에서는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수세기에 걸쳐 카이로 시민의 생활 터전이다. 지금도 시장의 건물이나 도로, 골목길, 배수로 등이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듯 해 현재 이집트에서 가장 매력적인 관광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시장은 1382년에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르쿠크(Al-Zahir Sayf ad-Din Barquq, 1382-1399재위)의 아들 알-칼릴리(al-Khalili) 왕자가 세운 대상(隊商)들을 위한 대규모 숙소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칸(khan)’은 아랍어로 대상들을 위한 숙박시설을 의미하는데 현재까지 1500여 개의 상점이 있다고 하니 그 규모만도 어마어마하다.

 이집트에 가면 누구나 한번쯤 접해볼 수 있는 파피루스(일종의 종이), 천, 금속공예 등은 정말 화려하고도 다양한 물품들이 많아 관광객들의 관심을 끈다. 나도 이집트만의 특색이 있는 물품을 몇 개 사기위해 파피루스와 스카프상점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그 중 한 파피루스 전문점은 대형 TV 크기의 파피루스를 소장하고 있었으며, 색채가 화려해서 불을 끄면 조명처럼 불빛이 났다. 특히 검은색의 파피루스는 색채가 짙어 어둠속으로 빨려갈 듯한 표현으로 사람을 압도하게 만드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2시간 가량의 시장투어를 마치고 다음 날 마지막 여행지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나는 꿈을 꾸며 잠을 청했다.

 

▲ 카이로의 피라미드와 스핑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이집트의 가장 대표적 문화유산이기도 한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을, 스핑크스는 피라미드를 보호하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세계 각국에서 워낙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자 보호를 위해 접근을 통제하고 있었다.
▲ 카이로의 피라미드와 스핑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이집트의 가장 대표적 문화유산이기도 한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을, 스핑크스는 피라미드를 보호하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세계 각국에서 워낙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자 보호를 위해 접근을 통제하고 있었다.
▲ 피라미드 주변에는 세계각국에서 온 관광객을 상대로 말이나 낙타투어도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 피라미드 주변에는 세계각국에서 온 관광객을 상대로 말이나 낙타투어도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 이집트 문화의 진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드디어 이집트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며 인류의 문화유산이기도 한 피라미드를 만나는 날이다. 이집트를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기자지역의 3대 피라미드를 보고 싶어 한다. 나 또한 역사책에서나 본 피라미드를 직접 만나기 위해 오늘을 기다렸다. 숙소에서 피라미드가 있는곳까지는 우버택시를 이용했다. 피라미드가 있는곳에 도착한 뒤 관광이 안될 정도로 많은 호객행위에 시달렸지만, 쿠푸왕의 피라미드 앞에 서니 그 간의 긴장과 수고로움은 훌훌 날려버릴 수 있었다. 피라미드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인데, 고대 이집트인은 계단형 피라미드를 ‘이알’, 사각형 추모양의 피라미드를 ‘메르’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피라미드라는 명칭은 피라미스라는 사각추 모양의 빵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고 그리스어로 불을 의미하는 ‘퓨르’에서 나왔다는 설 등 다양한 설이 있지만, 어원 자체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이집트에서 약 1200년간 50기 이상의 피라미드가 만들어졌지만,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이 기자의 3대 피라미드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자의 3대 피라미드는 수도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13㎞ 떨어진 기자 고원에 자리잡고 있다. 세 개의 피라미드는 왕의 이름을 따서 쿠푸 왕의 피라미드,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와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라는 명칭은 주변의 유적을 통해 판단해서 붙인 것으로, 실제로 두 왕의 명령으로 건설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 쿠푸왕의 피라미드앞 언덕에서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피라미드에는 접근이 제한돼 있어 포토존으로 만족해야 했다.
▲ 쿠푸왕의 피라미드앞 언덕에서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피라미드에는 접근이 제한돼 있어 포토존으로 만족해야 했다.

 쿠푸 왕의 피라미드에는 건설에 동원되었던 노동자들이 남겨놓은 낙서 속에 ‘쿠푸 왕 재위 17년’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다른 피라미드 내부에는 왕의 이름이 쓰여진 경우가 없다. 그 때문에 쿠푸 왕, 카프레 왕,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를 순서대로 제1피라미드, 제2피라미드, 제3피라미드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입장료를 미리 지불해야 입장할 수 있다. 그러나 동행한 친구가 기대했던 것 보다는 볼거리가 없다고 해서 들어가지는 않았다. 피라미드에 사용된 돌 하나가 사람 크기만 해서 실제로 이 큰 돌들을 그 당시 어떻게 옮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왜? 무엇때문에 만들었는지가 나를 흥미롭게 했다.

 피라미드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한 스핑크스를 만날 수 있다. 스핑크스는 테베의 바위산 부근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라는 이른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내고,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뒤에 오이디푸스가 ‘그것은 사람이다(사람은 어렸을 때 네 다리로 기어다니고, 자라서는 두 발로 걷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어 세 다리로 걷기 때문)’라고 대답하자, 스핑크스는 물속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 피라미드앞 빈터에서 카이로 시내를 배경으로 한 기념사진. 넓은 빈터에는 마차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고, 관광객이 보이면 앞다퉈 안내를 하겠다는 가이드들이 몰려 다니며 호객행위를 벌여 이미지를 흐리게 했다.
▲ 피라미드앞 빈터에서 카이로 시내를 배경으로 한 기념사진. 넓은 빈터에는 마차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고, 관광객이 보이면 앞다퉈 안내를 하겠다는 가이드들이 몰려 다니며 호객행위를 벌여 이미지를 흐리게 했다.

 

 ◈ 문화와 역사는 길이길이 보존되어야

 내가 만난 스핑크스는 실제 코가 잘려져 있고, 밑부분은 현대기술에 의해 새로 옮겨져 있는 듯 해 보였다. 그래서 안내를 맡은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본래 스핑크스가 위치해 있던 곳이 땅속으로 물이 흐르는곳이라 지하수에 의한 침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것이라고 했다. 또 처음 발견될 당시에는 머리는 보이고 몸통은 땅속에 묻혀져 있었기 때문에,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스핑크스의 얼굴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풍화작용에 의해 많이 훼손됐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일주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세계문명의 발상지이자 위대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이집트의 속살이 심각하게 훼손된 현장을 보고나니 마음이 편치 않다. 문화유산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호객행위와 바가지요금은 관광객이 두 번 다시 이집트를 여행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개선책이 마련돼야 할것으로 보였다.

 지금까지는 미주지역이나 유럽, 아시아 등에 관광객이 몰렸다면 앞으로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고 베일에 가려있는 이슬람문화권이 관광지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다만 인류 최대, 최고의 역사와 문화예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불안한 정국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때문에 이집트를 비롯한 인류문명의 발상지들은 지금부터라도 유엔 등이 적극 개입해 보존방안을 고민해야겠다.<끝>

 

<이세원 약력>

이세원
이세원

 

 

 

 

 

 

 

 

 

 

 

 

 

 

* 여행기를 쓴 이세원은 1989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등학교와 경상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에 다닐때 교환학생으로 중국문화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졸업한 뒤 UN 산하 환경전문기구 UNEP에서 인턴사원을 경험했으며, 지금은 2015년부터 주 말레이시아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다. 대학 때는 휴학을 한 뒤 영국과 스페인, 프랑스, 스위스 등지를 자유여행한 뒤 기행문을 쓰기도 했고, 그 뒤 필리핀과 홍콩, 캄보디아 등을 여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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