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아니면 안된다’…별세 김영애 마지막까지 연기

  • 입력 2017.04.0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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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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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애

MBC 공채 3기 탤런트…드라마 100편·영화 70여 편
‘황토팩’ 사업 실패 후 다시 배우 시작…제2의 전성기
췌장암 투병 불구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출연 열정

 

 

 배우 김영애(66)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연기에 자신을 바친 명배우였다.

 그는 47년 연기 인생 동안 100편이 넘는 드라마, 70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다. 이 작품수는 그가 얼마나 성실히 열정적을 연기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의 유작이 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 종영한 건 지난 2월 26일이다. 김영애는 그야말로 세상과 작별하기 직전까지 연기만했다.

 김영애는 1970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연예계 데뷔했다. 데뷔 초기에는 빼어난 외모로 크게 주목받았지만, 이후 연기력까지 갖추며 방송계와 영화계 모두에서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았다(1974년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최근에는 배우 김해숙·나문희와 함께 ‘엄마 연기’의 최고봉으로 불렸다. 특히 시청자와 관객의 마음을 치는 그의 절절한 감정 연기는 관계자들 사이에서 ‘눈물 보증 수표’로 불리기도 했다.

 가장 최근 예로 ‘판도라’(2016), ‘변호인’(2013)과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그의 모성애 연기는 평단과 관객에게 영화의 품격을 한 단계 올려주는 역할을 했다는 극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배우로서 김영애의 가치는 넓은 연기 스펙트럼이기도 했다. 엄마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강하고 독특한 캐릭터 또한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은 그가 다작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그는 드라마 ‘황진이’(2006), ‘아테나:전쟁의 여신’(2010), ‘로열 패밀리’(2011) 등을 거친 2000년대 중반 2010년대 초반까지 오히려 이른바 ‘센’ 캐릭터로 자신 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여배우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시기에 50대 여배우 중 ‘대통령비서실장’을 연기하고, ‘나이 든 기생’을 연기하는 건 오직 김영애만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김영애는 사업가로도 활동했다. 다만 성공과 실패를 오갔고, 사업에서의 스트레스가 췌장암으로 이어진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김영애는 2000년 시작한 황토팩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승승장구했지만, 한 TV 프로그램에서 그가 판매하는 팩에 유해성분이 있다고 보도하면서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이후 법원은 해당 황토팩에 인체 유해성분이 없다고 판결내렸지만, 이미 사업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김영애에게 독으로 작용했고, 암까지 발전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최근까지 있어왔다. 김영애는 2012년 ‘해를 품은 달’ 촬영 당시 췌장암 진단을 받았지만, 이 사실을 숨기고 끝까지 촬영을 마쳐 주위를 놀라게 했다.

 황토팩 사건 이후 다시 연기에 집중하기 시작한 김영애는 이후 오직 연기력만으로 제2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2012년 ‘나는 살인범이다’부터 지난해까지 10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송강호와 함께 한 1000만 영화 ‘변호인’으로 2014년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차지했다.

 그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송강호 못지 않게 연기하고 싶었다”, “김영애가 아니면 안된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김영애가 여전히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연기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여줘 젊은 배우들의 귀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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