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소나기’·잠수함…‘분노의 질주’, 물량 공세는 그만

제작비 2860억 대작·청량감 주는 명장면 눈길
‘감성팔이 서사’·과도한 설정…연출 방식 되짚어봐야
승인201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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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분노의 질주:더 익스트림’

 ‘가족’이라는 단어를 시종일관 강조하지만, 이상할 만큼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를 두고 뜬금 없이 인간미를 찾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들이 먼저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다.

 제목에 ‘운명’(fate) 이라는 감성적인 단어를 집어넣고, 관객보다 먼저 눈물을 보인 건 ‘분노의 질주:더 익스트림’(원제:The Fate of the Furious)(감독 개리 그레이)이다. 지난 2001년부터 만들어져 벌써 8번째 영화를 내놓은 이 시리즈는 점점 부피를 늘려가는 방식으로 그동안 잘 버텨왔지만, 이제 막다른 곳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와 친구들은 7편에 걸쳐 악당들을 제거해왔다. 가장 강력한 상대였던 ‘데카드 쇼’(제이슨 스태덤)도 감옥에 갔다. 이제 그들을 위기로 몰아넣을 능력을 가진 인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 ‘분노의 질주’ 제작진이 떠올린 게 내부의 적이다. 팀 내에서도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진 리더 도미닉이 동료들과 반목한다면, 이보다 더 큰 위기는 아마 없을 것이다.

 도미닉이 갑자기 사이버 테러리스트 ‘사이퍼’(셜리즈 시어런)와 손 잡는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제작비 2억5000만 달러(약 2860억 원)(‘명량’ 190억 원)를 쓴 대작답게 볼거리가 화려하다. 쿠바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경주 장면은 긴장감과 청량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시퀀스다. 주차장 건물에 있는 모든 차량을 도로에 떨어뜨려 ‘차 소나기’를 내리는 뉴욕 장면은 입이 딱 벌어진다. 아이슬란드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VS 잠수함’ 액션은 10편까지 제작될 이 시리즈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일지 상상할 수 없게 하는 스케일이다(항공모함과 우주선이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다). 언제나 그랬듯 온갖 종류의 슈퍼카가 눈을 즐겁게 한다.

 전 세계에서 15억 달러(약 1조7000억 원) 수입을 낸 전작 ‘분노의 질주:더 세븐’은 액션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브라이언’ 폴 워커(1973~2013)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극진히 담아 일정 부분 호평을 이끌어냈다. 개리 그레이 감독은 이 방식을 이번 작품에도 그대로 가져왔다. 전례 없는 무지막지한 액션 물량 공세를 펼치면서도, 가족을 위해 ‘배신자’라는 오명도 뒤집어쓸 각오가 된 아버지의 감성을 무법자이자 터프가이인 도미닉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감성팔이 서사’는 기어코 액션을 잡아먹는다. 물론 이 시리즈의 이야기 구조는 헐겁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액션으로 이를 만회하는 게 전략이라면 전략이었다. 그러나 신작에서 도미닉의 과장된 감성 연기는 서사의 단점을 오히려 더 부각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액션 자체가 목적이었던 전작들에 비해 ‘분노의 질주:더 익스트림’의 액션은 지루한 이야기를 달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긴장감 없는 서사, 맥락 없이 시작해 깨고 부수는 액션이 악순환하며 영화는 두 시간 동안 제자리를 맴돈다.

 디테일을 살리기보다는 몸집 불리는 데만 관심있는 듯한 이 영화 액션 연출 방식에 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시기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세계 최고 수준의 ‘카 스턴트’에 신선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나 전작들을 꾸준히 봐왔거나 액션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이 영화에 카타르시스를 줄 정도의 장면들이 담겼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핵잠수함 액션 장면인데, 어뢰와 열추적미사일까지 등장시켜 근육 자랑만 하는 이 시퀀스는 과도한 설정이 영화를 얼마나 허무맹랑하게 만드는지 보여줄 뿐이다.

 북미 현지 언론은 이번 작품이 개봉 첫주에만 전 세계에서 4억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분노의 질주’ 8번째 편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2019년에 9편, 2021년에 10편이 남아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액션 시리즈라는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제 다른 길을 모색할 때다. 결국 그 길은 이 영화의 정체성인 액션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잠수함까지 등장했으니 양으로 밀어붙이는 건 이제 그만 둘 때가 됐다. 

 “브라이언이 있었다면 해결책을 내놨을 텐데….” 레티가 말한다. 그러자 테즈는 “브라이언은 떠났어. 절대 다시 이 일에 끌어들이면 안돼”라고 답한다. ’분노의 질주’가 그토록 강조했던 ‘가족’이라는 단어는 워커를 떠올릴 때 항상 애달픈 것이 된다. 도미닉은 아들의 이름을 브라이언으로 짓는다. ‘분노의 질주’를 봐야 할 이유가 남아 있다면, 그건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때문이다.

 

 

/  손정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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