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6·25전쟁 제67주년을 맞이하여

  • 입력 2017.06.25 17:10
  • 수정 2017.06.2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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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용진 경남동부보훈지청장
▲ 전용진 경남동부보훈지청장

 6월은 순국선열들과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되새기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그리고 북한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한 달이기도 하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38선 전역에 걸친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전쟁발발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한달여 만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전쟁 발발 소식을 접한 미국은 1950년 6월 25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히 소집해 결의안을 통해 북한에 침략행위 중지 및 38도선 이북으로 철수를 요구했으나 북한이 이에 불응하고 계속 남침을 강행하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일 후인 1950년 6월 27일 유엔 회원국의 북한군 격퇴 참여를 결정했다.


 이어 유엔은 1950년 7월 7일 유엔군을 창설해, 7월 8일 미국의 맥아더장군을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는 등 본격적인 유엔군의 참전이 시작됐다.


 6·25전쟁은 우리나라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유엔가입국으로 구성된 다국적 유엔군과 중공군 등이 참전한 국제전이었다. 이름조차 낯선 이국땅에 병력을 지원한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16개 국과 의료를 지원한 스웨덴, 인도 등 5개국에서 온 유엔군과 우리 국군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로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다.


 독립투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또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 이는 과거의 역사가 단순히 사실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발전을 기약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일제강점기 시절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또 6·25전쟁에서 북한 공산군을 물리쳐 나라를 지키고, 전쟁폐허와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이겨내며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쾌거를 이루고 세계 속의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안위와 영달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신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6·25전쟁에서 맨주먹으로 앞으로 전진하며 나라를 지킨 6·25 참전유공자들과 21개국에서 온 유엔군 참전용사 등 수많은 국가유공자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풍요롭고 자유로운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후손들은 대한민국의 존립과 유지를 위해 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다 희생·헌신하신 국가유공자들을 기억하고 그 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이어받아 힘 있고 위대한 국가를 만들어야 함은 물론 이분들이 존경과 예우를 받고 영예로운 삶이 보장되도록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호국과 보훈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호국은 남북 대결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고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것이고 호국이 돼야 진정한 보훈이 실현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훈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국가유공자가 지켜온 나라를 더 튼튼히 지켜 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이 호국정신으로 하나 되어 나라를 지키고 평화통일을 이뤄 나갈 때 비로소 그들의 희생과 공헌에 진정으로 보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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