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호 칼럼] 우리는 아직도 ‘동방예의지국’이란 도덕적 우월감 속에 산다

  • 입력 2018.09.09 17:27
  • 수정 2018.09.09 18:52
  • 기자명 /배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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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성호 본지 상무이사
▲ 배성호 본지 상무이사

 우리는 아직도 ‘동방예의지국’이란 도덕적 우월감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공자도 한번 가서 살고 싶은 나라로 칭송했다는 것이다.

 물론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통하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고 젊은 층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도덕적 우월감을 가슴 깊이 갖고 살아가고 있다.

 이로 인해 아직도 일본·미국·중국인들에게 왜·양·뙈 놈자를 붙여 발음하는 관행이 수십 년 이어져 온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경제적 부강 등으로 윤리와 도덕이 실종된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왜놈’이라며 그들을 얕보고 업신여길 때 그들은 ‘남에게 폐 안 끼치는 연습’을 철저히 해 깨끗함과 질서 예의 바름이 대단한 수준에 올랐고, ‘가장 살만한 나라’, ‘살아보고 싶은 나라’로 변모했다.

 고로 동방예의지국에 대한 환상과 꿈을 현재의 암담하고 비참한 현실을 환골탈태할 수 있는 추진력으로 삼아 구체적 실천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집안이 화목하려면 기강이 서야 하고, 기강이 바로 서려면 이를 다스릴 어른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무랄 것은 나무라고 칭찬할 것은 칭찬할 줄 아는 어른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형제끼리 싸우다가도 기침소리 한 번에 싸움을 뚝 그치게 할 위엄을 가진 어른이 있는 집안은 늘 화목하다.

 사회나 나라도 위엄있는 어른이 많을 때 건전해지는 법이다.

 나라가 어지럽고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잘못을 나무라고 설득시킬 어른과 지성인이 필요하다.

 지금이 잃어버린 윤리와 도덕을 찾는 심성교육이 필요한 때다.

 그런데도 우리사회는 경륜있는 원로들의 능력이 과소평가되고 지정인들마저 침묵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우리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참되고 바르며 사람다운 삶의 자세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할 때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무엇이 인간의 도리이며 어디에 삶의 가치가 있는지를 확실하게 교육할 때가 바로 오늘이다.

 인간사회가 조화를 이루며 지탱해 가는 것도 법이라는 강제규범과 양심이라는 도덕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에서는 도덕률에 의해 사회질서가 유지됐지만 사회가 산업화, 다양화되면서 법이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가치의 기준은 물질위주로 바뀌고 인간에게선 도덕성이 메말라버린 사회가 요즘의 산업사회다.

 특히 지금의 50·60대를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라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50·60대는 부모를 모시는 희생(?)을 하고도 자식에게 보상(?)을 못 받는 손해보는 세대로 지칭되고 있다.

 하지만 부모님의 노후와 자식의 뒷바라지에 마지막 남은 힘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대부분이 ‘동방예의지국’이란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도덕이 실종돼 버린 참담하고 살벌한 세상을 자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으로 희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라옵건대 이사회 주인이 될 젊은 층들은 50·60대의 이 같은 마음을 한번쯤 깊이 헤아려 주기를 간곡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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