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한국축구, 싸움닭’이 없다

‘힘·투지’ 사라진지 옛날…북한전서 끌려다녀

  • 입력 2008.09.12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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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닭이 없다!’

지난 날 아시아를 호령했던 ‘힘과 투지’가 실종됐다.

“대표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남다른 투지와 정신력, 책임감이 필요하다”던 허정무 감독의 말을 무색케 하기에 충분한, 부끄러운 한 판이었다.

허정무호는 10일 오후 9시(이하 한국시간) 중국 상하이 훙커우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한과의 2010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 1차전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23분 터진 ‘막내’ 기성용(19·서울)의 천금같은 동점골에 힘입어 1-1 무승부를 거뒀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승리가 절실했다.

북한(1승1무 승점 4점·1위)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이상 1무 승점 1점·공동 2위) 등 월드컵 본선 티켓을 다툴 다른 팀들에 비해 한 경기를 늦게 치른 탓에 승점을 쌓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은 경기 전날 선발로 낙점됐던 신영록(21·수원), 이청용(20·서울)을 출전명단에서 제외하고, 조재진(27·전북), 최성국(25·성남), 김치우(25·서울) 등을 공격 일선에 내세웠지만 북한 수비진을 깨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오히려 예상 외의 공격적인 전술을 내세운 북한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드러냈고, 후반 18분 김남일(31·빗셀고베)의 파울로 홍영조에게 페널티킥골을 헌납해 0-1로 끌려가는 극한의 상황을 맞기도 했다.

기성용의 골로 간신히 무승종부를 거둔 한국은 오는 10월 15일 서울에서 가질 아랍에미리트(UAE)와의 최종예선 2차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적극적인 북한 선수들의 움직임과 큰 대조를 보였다.

전반 초반 2대1 패스를 통해 활로를 개척하는 모습이 잠시 돋보였지만, 이후 예의 긴 패스로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뻥축구‘로 일관했다.

수비수가 다가서면 동료에게 볼을 넘겼고, 적극적인 몸싸움으로 볼을 경합하는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

좌우 대각선 측면으로 패스를 전개하며 적극적인 경합을 펼쳤던 북한 선수들의 움직임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이번 북한전에 나선 김두현(26·웨스트브롬)을 비롯해 박지성(27·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설기현(29·풀럼) 등이 활약하는 프리미어리그와 비교해 봤을 때, 차이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90분 내내 쉴새 없이 공격과 수비가 전개되고, 공을 잡을때 가해지는 상대수비의 압박은 그라운드에 나선 선수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전통적으로 힘과 체력, 스피드 등을 앞세워 아시아 경쟁국들을 눌러왔던 한국축구는 최근 각급 국제대회에서 어느새부터 얌전한 축구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김두현은 지난 5일 서울에서 가진 요르단과의 평가전을 마치고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다 대표팀 경기에 나서면 (육체적, 심적)부담이 덜한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기까지 했다.

‘얌전한 축구’는 결국 수비수 한 명을 제대로 제치지 못하는 소극적인 플레이를 낳았고, 밀집수비와 거친 수비를 앞세운 상대를 공략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월드컵 7회 연속 본선진출을 노리는 상황에서, 특히 지난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세계의 강호들과 수준차를 절감하며 고개를 숙였던 동생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날 경기는 ‘절박함’이 부족한 플레이 뿐이었다.

과거 이회택, 고정운, 최영일, 김태영 등 파워와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그라운드를 압도했던 선배들의 모습이 그리울 수 밖에 없던 한 판이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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