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칼럼] 他生之緣(타생지연)과 이청득심(以聽得心)

  • 입력 2019.05.30 15:16
  • 기자명 /이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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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수 기자
▲ 이상수 기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곧 他生之緣(타생지연) ‘他 다를 타’·‘生 날 생’·‘之 갈 지’·‘緣 인연 연’ 타생의 인연(因緣)이라는 뜻으로, 불교(佛敎)에서 낯모르는 사람끼리 길에서 소매를 스치는 것 같은 사소(些少)한 일이라도 모두가 전생(前生)의 깊은 인연(因緣)에 의(依)한 것임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수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진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 모두가 모습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심지어 마음까지 나하고 다르다.

 이를 두고 천태만상(千態萬象)이라고도 한다. 세상 사물이 한결같지 않고 각각 모습과 모양이 다름을 이르는 말이다.

 이같은 인간관계 여건속에서 현재 삶의 기쁨과 슬픔을 느끼도록 하는 특정 관계가 행복을 줄지 혹은 고통을 줄지 장담할 수 없는 문제다. 이러한 불확실한 인간관계에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만족도를 극대화하고, 그 속에서 불행과 고통을 줄이기 위한 자신만의 배려있는 정체성이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노하우로 거듭난다. 

 대부분 사람은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일정한 반응양식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부당한 행동을 해서 화가 날 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각자만의 대응방법이 있다. 

 이를 두고 우리는 ‘인간관계 기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귀를 기우려 들으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모두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생각이 앞선 나머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 공존하는 것이다. 싫든 좋든 서로 감정을 교류하고 상호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세상 이치가 돼 버렸다. 

 인간관계에 관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데일 카네기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비결은 말 잘하는 솜씨가 아니라 잘 들을 줄 아는데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효과적인 경청을 위해 상대방 이야기에 적절히 공감하고 반응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은 수동적 자세이며, 듣는 태도에 오감을 사용해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은 능동적 경청이라고 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그것이 맞는지 틀린지 속으로 판단하며 반응 없이 듣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듣기만 하면 미리 판단하고 상대방의 말에서 부정적인 것, 비판 적인 것, 불쾌한 것부터 귀에 들어 올 수 있다. 부디 경청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서로를 추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신영의 ‘공감’이라는 책에 소개된 ‘경청’에 대한 한자어 풀이는 매우 인상적이다. 들을 청(聽)자의 부수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귀 이(耳)자 밑에 임금 왕(王)자가 있고, 오른 쪽에는 열십(十) 아래에 눈 목(目)자를 옆으로 눕혀놓고, 그 밑에 한 일(一)자와 마음 심(心)자가 차례로 놓여 있다. 

 ‘열개의 눈과 하나의 마음’이라는 부제에서 처럼 듣는 다는 것은 왕과 같은 귀, 즉 매우 커다란 귀를 갖고 집중해서 마음의 눈을 가지고 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경청은 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입으로 손으로 표현하며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단어 하나 하나에 시시비비를 가리기 이전에 상대방이 지금 어떤 심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하는 지를 간파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 성격과 행동이 아무리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내 손을 한 번 들여다보자 다섯 손가락 길이가 각기 다르다. 그렇지만 길이가 각기 다른 손가락들은 오히려 특정한 쓰임새가 있다.

 결론은 내 육신의 손가락도 각기 다른데 남끼리 만나면 어떻겠는가? 남끼리 만나 어느 정도 융합되면 그것은 성공이다. 각기 다른 손가락의 쓰임새 처럼 분명 상대도 쓰임새가 따로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관계’ 기술을 동원해 상대와 융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연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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