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호 칼럼] 노·사가 공존하는 사회

  • 입력 2019.12.08 13:15
  • 기자명 /배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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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2년 반이 지났다.

 그동안 경험에서 볼때 기업가와 근로자간의 갈등상황을 계량적으로 평가하지 않더라도 기업가나 근로자는 사고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분규의 양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아 단순한 권리주장 차원이 아닌 ‘권익주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정당한 노동자의 댓가인 임금인상 즉 성장의 과실을 고루 나눠 갖자는 욕구이다.

 분규의 양상도 초기의 과격 폭력에서 준법투쟁으로 변했으며, 힘의 대결에서 이성적 합리적 해결방법이 보편화됐다는 분석이다.

 노동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노동운동이 뿌리내리면 다음 단계의 투쟁은 ‘인권주장’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자본가와 노동자 등 양자의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되고 고른 분배가 이뤄지면 근로자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삶의 질을 높이게 된다.

 또 보다 좋은 작업환경을 요구하게 되고, 주 52시간 등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등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며 인생을 즐기려는 경향이 자리잡게 된다.

 기업가는 더 많은 노동력을 희망하지만 기업의 생산성은 저하되고 이로 인해 투자의욕은 떨어지게 될 것이다.

 자본가에게 수탈(?)만 당해오던 노동자들의 인권주장이 고조되면 과거와 같은 통제나 지시가 통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온실 속에서 안일한 기업경영을 해온 자본가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기업이 처하고 있는 현실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가와 근로자는 불가분의 표리관계에 있어 근로자는 자본주의 고용자로서 기업과 운명을 같이 하게 된다.

 기업이 없으면 근로자는 취업이 불가능하고, 근로자가 없으면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한다.

 17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초기단계에서 기업과 자본의 부족으로 근로자의 푸대접이 극심했으나, 기업과 자본이 확충됨으로써 근로자의 지위가 점차 호전되기 시작했다.

 반면 시대적 발전단계를 거치는 동안 사회와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문명화된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사실 우리는 지난 1960년 대 국민소득 100불에서 50여 년이 지난 현재 3만달러로 300배 가량 급증했다.

 이에따라 교육을 통해 풍부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 문명노동자들은 단순노동자에 비해 고용조건에 따라 직업선택의 문도 넓어졌다.

 근로자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은 스스로의 권익을 위해 마침내 단결하고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은 자본가에 대항해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 등 권익투쟁을 계속하면서 스스로 ‘삶의 질’을 높여가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려 해 기업가와 근로자는 동상이몽을 하면서 발전해 가는 것이다.

 현대의 근로자는 무지하고 무능한 노동자가 아니라 고도의 교육과 기술을 축적한 문명노동자로 기업에 참여하는 종업자다.

 기업주나 재벌이라고 해서 근로자 위에 군림하려 해서도 안되고 명령하려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최고의 비결은 근로자들에게 충분한 노동의 댓가(임금)를 지불하고 마음을 사로잡아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 이윤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타협과 양보를 모르는 극한적인 노사분규는 근로자들의 기존 일자리를 앗아갈 뿐아니라 기업가들의 투자의욕마저 냉각시켜 또 다른 무산계급을 궁지로 몰아넣게 된다.

 이제 노사대결은 자본과 노동의 극한적인 대결에서 벗어나 지혜와 지혜의 경쟁으로 한 차원을 높여야 할 때인 만큼 기업가든 근로자든 다같이 사고의 전환을 가져와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노동운동은 영웅적이거나 폭력적이 아닌 가장 지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실리적이고 공존적이어야 노·사가 함께 살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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