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웅 칼럼] 마음을 해동(解凍)시킨 노인

  • 입력 2020.02.26 16:34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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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 사회는 모두가 마음속에 안고 있는 응고된 사랑의 결핍을 녹여내는 이른바 해동(解凍)기법이 필요한 때다.

 즉 마음속에 얼어붙어 있던 견고한 사랑의 응어리를 하나씩 녹여낼 수 있는 용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은 미국의 심리학자인 쿠르트 레빈(Kurt Lewin, 1890~1947)에 의해서 주창된 해동기법-unfreezing type-의 중요한 사상이다.

 2월의 칼바람이 부는 이때 우리의 마음을 녹여준 선행(善行)을 여기 전한다.

 지난 2월 19일 오전 10시 30분쯤 인천시 부평구 산곡1동 행정복지센터에 80대 노인이 행정도우미를 찾아와 비닐봉투 하나를 맡기고 돌아갔다. 이 80대 노인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산곡1동에서 매달 김치와 반찬 그리고 쌀들을 약간 받고 있는 노인인데 이 노인이 맡기고 간 비닐봉투 속에는 5만권 100장 ‘500만원’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기자가 노인을 찾아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오히려 화를 내면서 “나는 나라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받고 있기 때문에 나보다 못한 이웃을 돌봐 달라”고만 부탁했다는 것이다.

 인천시 부평구의 경우 기초생활 대상자에게 지원되는 생계비는 부양 가족 수와 생활처지에 따라 평균 66만원 정도 현금을 지원하고 1년에 한번 10kg짜리 쌀 한 포대와 김치 약간을 지원하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런데 이 80대 노인이 기초생활 수급자로 최대의 액수를 지원받는다고 해도 한달에 노인이 사용할 수 있는 돈은 겨우 50만원 내외라는 것이다. 이 돈으로는 전기, 수도 요금 등을 제외하면 생활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500만원이란 돈을 기부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몇 년을 아꼈길래 이런 큰돈을 저축해서 기부했을까 생각하니 동장은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사회는 아직도 사람 살 곳이 된다는 희망을 보여준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전주의 이름 없는 기부천사와 함께 한국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원초적 자산(原初的 資産)’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그 마음이 지금 우리사회 도덕적 윤리관에 ‘대못’을 박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 강남에 사는 금수적 귀족들은 이태리 ‘만조니24’란 유명 모피코트 한 벌에 1억하는 것을 불과 1시간 만에 30억원 어치나 사간 것을 비롯해 역시 이태리산 남성니트와 코트를 30분만에 롯데쇼핑을 통해 2억5000만원 어치나 싹쓸이한 것을 보면 한국은 세계무역 12위국임은 분명한 것이다.

 뿐만아니라 서울의 모 백화점 양주코너에서는 위스크(몰트) 한 병에 1200만원하는 것이 단 5분만에 열 명이나 팔렸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8시쯤 강릉 고속도로에서 한 대 30억원이 넘는 스포츠카를 밤새 달리다 속도위반으로 경찰에 검거된 31살 이 모 씨는 부모 잘 만나 좋은 세상 사는지는 몰라도 이런 거액의 스포츠카를 사준 부모는 정당한 경제 활동으로 한국사회를 휘젓고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돈 갖고 내 맘대로 쓰는데 누가 딴지를 걸겠냐만은 그들이 굶어 모아 쓰는 돈이 ‘정당하고 정의롭게’ 모아서 쓰는 것인가는 반드시 시민의 이름으로 살펴봐야 한다.

 2019년 12월에 서울 SMC&C플랫폼 ‘’틸리언 : Tillion pro 프로‘를 통해 20~60대 남녀 50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6%가 ’나는 가난하다‘고 답한 통계가 나왔는데 이들은 연봉 9000만원에서 2억5000만원까지 받는 사람이 11.3%라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가난의 기준을 계층과 사람에 따라 달라 질 수 있지만 이들이 소위 말하는 한국사회의 주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면 500만원쯤이야 ‘껌 값’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건강하고 정당한 경제활동과 정의롭고 윤리적 사회환경 속에서 경제적 부(富)를 축적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볼 때 그렇게 매끄럽지 못한 환경속에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면 80대 기초생활 노인이 보여준 인간의 행동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몇 년전 경기도에서 근무했던 한 공무원(경찰 공무원)은 벌집만 30채를 가지고 진급도 하지 않은 채 한자리에서 20년간이나 있으면서 서민의 고혈을 짜 먹었는가하면 국가예산 2700억원과 민간자본 1000억원 등 모두 3700억원을 들여 만든 ‘마산 로봇랜드’ 사태는 눈먼 돈이면 아무렇게나 마구 써도 된다는 공무원들의 탁상공론이 가져온 비극의 현장을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날카롭게 나빠진 실수를 응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민의 감옥’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원형의 감옥인 ‘팬옵티콘:panopticon’이란 감옥을 만들어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무엇보다 관료주의적 타성 속에서 국민의 세금을 경제적 효율성도 없이 제멋대로 쓰고도 눈 하나 까닥하지 않는 인간들을 반드시 팬옵티콘이란 원형 방으로 보내야 한다.

 이번 인천시 부평구 산곡1동에서 일어난 80대 노인의 선행은 아직도 우리사회가 썩 지않고 건강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증명한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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