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모] 이성진 시인 ‘중심이 흔들릴 때’

  • 입력 2021.02.01 12:18
  • 기자명 /정리 한송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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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이 흔들릴 때’


가을이 내려앉은 공원
아이가 힘차게 돌리는 끈에 매달린 비행기
발버둥이다

낮은 키만큼 짧은 반경
달아나지 못해 윙윙 울어대는 끝의 비명
그럴수록 아이의 웃음 낙엽 위 수북하다

끝은 늘 비명인데 왜 몰랐을까
중심은 배꼽이 아닌 손끝에도 있다는
그 작은 사실

멀리 날아가지 못한 채
살려달라 발버둥 치는 저 안간힘

중심은 내가 잡아야 하는데
아침마다 낯선 중심으로 끌려가는 당신
아득하게 허물어진 끝을 끌고
새들도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 시간
허허한 웃음도 잃은 채 돌아가는데

사는 동안 알아야 하는
중심을 잃으면 가슴 쳐야 한다는 것
끝에 매달린 자유는 한 치 빈틈없이
평평해진 고문에 포박 당한다는 것

중심을 잡은 쪽은 언제나 핼러윈이고
끝은 몸살 나도록 발버둥쳐야하는
중심이 흔들릴 때

 

 ◆시작노트
 삼 년 전, 평생 처음으로 뉴욕에 간 적이 있다. 자유의 상징과도 같은 그곳, 센트럴파크에는 아직도 이메진이 하루 종일 흐르고 지구촌 중심을 잡겠다는 유엔본부, 상업광고의 끝판왕 타임 스퀘어 광장, 911테러로 엄청난 희생이 발생된 세계 무역센터, 그 자리에 들어선 추모공원 911메모리얼 풀에도 갔었다. 
 꿈같은 시간들이었을까? 코로나 팬데믹이 그 모든 기억들을 지우고 있다.
 다시는 갈 수 없을 듯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오늘 아침 내 기억의 뉴욕풍경이 TV화면에 가득하다.
 셀 수 없는 주검들, 가족들, 눈물도 지운 채 단체로 맨하튼 하트섬으로 들어서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도 깨끗이 지우고 있다. 모든게 흔들리는 아침이다.

 ◆ 이성진 시인 약력
 경남 밀양 출생, 창원시 거주
 계간 ‘시와편견’ 등단
 시편 작가회 회원
 시사모 동인, 운영위원
 공저,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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