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호 칼럼] 일본, 우리의 편일까? 적일까?

승인202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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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성호 본지 상무이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끌려간 여성 피해자를 ‘성매매 계약’을 통한 매춘부라고 주장한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논문에 대해 학자들의 반박이 이어지고 있다.

 하버드대 교내 신문인 ‘더크림슨’은 지난달 7일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학계의 비판과 학생들의 청원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위안부’라는 어휘 자체는 매춘부를 일본식으로 번역한 것으로, 일본 육군이 강압적으로 성노예로 만든 여성과 소녀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일본의 대표 보수 언론 산케이 등을 통해 전 아시아와 유럽 등에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으나, 일본정부는 램지어 교수에게 지난 2018년 일본 문화를 해외에 알린 인물에게 주는 ‘욱일장’ 6가지 중 3번째인 ‘욱일중수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3·1절에 즈음해 우리정부는 일본에서 10대 후반까지 자라고, 공식 직함이 ‘미쓰비시 일본 법학교수’로 돼 있는 램지어 교수의 입에 하루속히 재갈을 물리는 대책을 마련하고, 사과를 받아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일청구권에 대한 지난 60여 년의 지나간 일들을 한번 돌이켜 보자

 1961년, 5·16 혁명정부는 잘 사는 국가건설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텅 빈 국고를 채울 수 없어 어떤 경제정책도 추진할 수 없는 현실에 부딪혀 박정희 대통령은 고심 끝에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대일 청구권’과 ‘월남 파병’으로 알려지고 있다.

 혁명 6개월 후 박 대통령은 미국 방문길에 잠시 일본에 들러 한·일국교정성화의필요성을 강조하며 일본의 동의를 이끌어 냈다.

 1962년 11월,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일본 오히라 외무상의 두번째 만남에서 합의한 이른바 ‘김종필·오히라 메모’는 훗날 한·일 기본조약의 근거로 작용하게 됐다.

 1964년 3월, 정부가 마침내 ‘한·일 외교 정상화 방침’을 발표하자 전 국민의 반대시위로 연일 격화일로로 치닫자 박 대통령은 비상계엄령 선포라는 초강수를 두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마침내 1965년 6월 22일 혁명정부는 갖은 난관 속에서도 ‘한·일 기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국교정상화의 길을 열었다.

 청구권 관련 사항은 무상공여 3억불과 차관명목 3억불을 일본이 제공하는 대신한국은 식민지 피해에 대한 배상문제를 일체 포기키로 약속했다.

 이렇듯 쌍방간의 종결된 사안이 60여 년이 지나도록 봉합되지 못하고 왜 자꾸만 재발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우리정부가 지금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한 탓으로 여겨진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은 당시 시급사업인 고속도로와 포철건설 등에 우선 투자하다보니 정작 피해 당사자를 위한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누구의 잘못으로 봐야 옳은가.

 필자의 생각은 이젠 위안부나 강제징용 등 일제와 관련된 창피(?)하고, 말못할 수치심과 서글픔이 함께 밀려오는 지난 일들은 깊이 묻어두고 싶다. 일본의 통치를 받은 지난 수십년은 우리에게 고통과 치욕의 세월이었지 자손들에게 말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한·일국교가 정상화된지도 어언 반세기를 넘었다.

 피해자나 유족들이 원한다면 국가가 직접 일본과 협상에 나서 보상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일제침략을 당한 무능하고 허약한 국가로서의 책임이 더 크기 때문이다.

 엉뚱한 곳에 국고를 낭비하지 말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문제를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해결하길 간곡히 바란다.

 한마디로 일본은 “김종필 전 총리를 통해 보상을 다해줬다”고 “지금에 와서 무슨 말이냐?”며 대화자체를 묵살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도대체 외교당국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사실 그동안 한·일간은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문화 등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양국간의 마찰을 줄이고 상호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으나,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창시절 유태인의 삶의 지혜 중 첫번째가 ‘다툼없이 사는 것’으로 배웠기에,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멀고도 가까운 나라’로 불린 한·일 두 나라는 지금까지 풀지못한 문제들을 하루속히 해결함으로써 이제는 명실상부한 ‘가깝고도 진정한 이웃’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일본은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순식간에 날려보냈지만 미국을 영원히 잊지 못할 철천지원수로 생각하지 않고, 종전 후에는 수많은 산업전사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내 그들의 선진기술을 배우게 하는 등 얻을 것은 얻고, 따질 것은 외교라인을 통해 주장하는 등 실리외교를 펼쳤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배성호기자  baesh@gn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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