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데스크]“한 열흘 귀는 즐겁다”

  • 입력 2006.05.22 00:00
  • 기자명 장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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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지방선거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후보자들마다 한 표라도 더 얻으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발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정작 관심을 가져야 유권자들은 지역에 출마한 후보가 누구인지 관심조차 없다. 살기도 팍팍한데 선거는 무슨 선거냐는 반응이다. 전국 어디를 가나 이런 분위기다.

지방선거 첫해인 1995년 투표율 68%를 고점으로 1998년에는 52.7%로 떨어졌고 2002년 지방선거 때는 48.8%에 그쳤다. 현재의 선거판 분위기라면 역대 최저투표율인 2002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다. 이렇게 저조한 투표율로 설사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단체장으로서 의원으로서 제대로 행세를 할 수 있을지 정말로 걱정스럽다.

이러한 유권자들의 냉소주의는 정치에 대한 불신의 영향이 크다. 걸핏하면 국회의원들이 핏대를 올리는 판에 국회는 싸움장이 되다시피 했다. 선거 때만 되면 터져 나오는 공천비리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일부 의원과 단체장들이기는 하나 각종 비리로 검찰에 불려 다니기 바쁘다. 사흘이 멀다고 터지는 정치인들의 비리에 투표는 해서 무엇 하겠느냐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이 저마다 청렴하고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며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이고 싫다는 손을 억지로 잡고 한 표 달라며 끔뻑 죽는 시늉을 하는 것을 보면 또 무슨 배신을 하려고 저러나 싶어 성이 난다.

무슨 공약은 그리도 많은지, 정치권에서 이름께나 있는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다니면서 쏟아내는 장밋빛 공약에 어지러울 뿐이다. 그 공약대로라면 선거가 끝나면 대한민국은 천국보다 더 살기 좋을 것이 분명하다. 고속철 개통으로 많은 지방공항이 승객이 없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타당성과 국가개발에 꼭 필요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따져보지도 않고 이와 비슷한 국책사업을 선거 공약이란 이름아래 가는 곳마다 남발하고 있다.

이처럼 선거 때 제시한 공약을 지키겠다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해 예산낭비가 많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다. 지난해만 해도 이런 부류의 사업이 예산 낭비로 신고돼 중단되거나 재검토에 들어간 것이 수십 건에 육박하고 있다.

은행돈을 다 끌어 모아도 모자랄 판인 그 많은 공약 비용에 또 얼마나 국민을 쥐어짤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후보들마다 장밋빛 청사진에 한 열흘 귀는 즐겁지만 그 즐거움은 세금 폭탄이 되어 국민들 등골 빠지는 일만 남은 셈이다.

이번 선거에서 내 뱉은 공약을 지키지 않을 때는 주민소환 청구 투표를 해서라도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당선자의 공약 타당성도 따져야 한다.

또 생색내기 선심성 행사는 얼마나 많은지, 재정자립도가 50%도 안 되는 지역에서도 온갖 이름을 붙여 매년 여는 축제는 10년 전보다 몇 배로 늘어났다. 작년 한해만 해도 전국에서 열린 축제 및 각종행사는 수 천회다. 거기에 들어가는 돈도 엄청나다고 한다.

실현 가능한 정책경쟁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자며 매니페스토 실천 협약에 여야 대표가 함께 서명해 놓고 언제 그랬느냐는 식은 곤란하다. 돌아가는 선거판을 보면 오히려 중앙당이 물을 더 흐려놓고 있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만들어 줄을 세운 것도 모자라 부패한 지방권력 심판이니 무능한 정권을 심판 하자며 정당의 간판 얼굴을 앞세우고 전국을 들쑤시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선거판의 말싸움을 듣는 것도 지겨워하고 있다. 그들은 제발 나서지 말라. 지방일꾼을 뽑는데 중앙당이 나서서 설치는 것은 국민들의 갈등만 키울 뿐이라는 다수의 목소리에 기를 기울여야 한다. 이제 중앙 정치권도 조용한 지원이 필요하다.

유권자들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소속 정당이 아니라 후보자의 비전과 정책, 자질과 능력이다. 특정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작대기를 꽂아 놓아도 당선된다는 것은 우리지역의 선거판이다. 정작 선거보다는 공천에 목을 매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는 당에 충성이 우선이고 지역 유권자는 항상 뒤다. 이러한 결과를 빚은 것은 유권자들이 사람 됨됨이나 정책이나 비전보다는 지역정서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닌 자업자득의 결과다. 아니면 말고식 공약 선심성 행사. 선거 때만 되면 되살아나는 지역주의 이것은 백약이 무효다.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유권자의 표다. 이제는 유권자가 똑똑해야 한다.  /장병길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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