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기는 모란’
겁 없이 뚜껑 열어 쏟아진 먹물
쓸고 닦는 자리
몽당붓은 오뉴월 발을 치고
화선지의 모란은
아직 피지 못하고 찢기고 있다
베란다에 흘린 들깨 인연으로
제 집처럼 찾아든 참새
벌써 가을을 맛 본 것처럼
지름길로 다가오고
허벅지 흐르는 하얀 속치마 모란
올해도 기다린다
샛바람 핑계로 움츠러 들고
내 봄은 얼마나 될까
다가오는 계절을
와락 껴안지도 못하고 있다
◆ 시작노트
지금쯤에선 붓 끝에서 피는 대로 즐기려 마음을 내려놓는데 고향 후배 화실을 방문하게 되니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다시 연구하게 된다.
화단의 모란은 어떤 이야기 보따리를 풀 건가 봉곳하다.
자세히 보고 들을 것이다
이제는 편히 가자 마음 먹었기에 올해는 내 봄이 가득할 것 같다
◆조정희 시인 약력
- 경기 광주 거주
- 시사모 동인
- 시집, ‘소나기 지나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