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욱의 세상만사] ‘기대치’와 ‘기준치’를 분명히 하라

  • 입력 2023.05.18 10:52
  • 수정 2023.05.18 10:53
  • 기자명 /노종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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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욱 편집국장
노종욱 편집국장

 우리의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수많은 관계 안에서 우리는 얻기도 하고, 때로는 잃기도 한다. 또 그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렇게 애를 쓴다.

 삶의 관계 안에는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 다시 말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이다.

 시작은 좋았지만 그 끝은 사납게 정리될 수도 있을 것이며, 시작은 비록 아름답지 않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단단해지는 관계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관계를 맺을 때는 신중해야 한다.

 ‘계산적’이기보다는 ‘계획적’이 돼야 한다. 관계가 계산적일 때는 욕심이 생겨난다. 하지만 계획적일 때는 관용이 생겨난다.

 이 두 가지의 현상 속에서도 우리는 사람인지라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의든 아니면 타의든 상처를 받기도 한다.

 상처를 받았을 땐 과감히 ‘용서’로 포장해 털어버려라.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더 괴롭다. 용서가 될 때까지 그 상황에 나 자신이 갇히게 된다.

 법정스님은 그의 저서에서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둬들이는 일”이라고 했다.

 그것 또한 무소유의 정신으로 승화시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아이였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생각하는 게 많아지고, 버려야 할 것들이 늘어가고, 참아야 하는 것들이 더해지고 감당하지도 못하는 감정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부터 힘들어진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다.

 우리에게는 세 가지 눈이 필요하다.

 첫째는 자기를 보는 눈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남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내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를 알고 자기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그들과 조화를 이뤄나갈 때 건강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셋째는 세상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이 세상은 지금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나는 이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는 눈이다.

 개인이 속해있는 사회 전체가 성장하지 않는 한, 개인의 성장은 한계가 있다.

 자기 자신과 남을 보는 지혜로운 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 전체를 통찰하는 눈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그런 눈이 생겼을 때 자신이 속한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의지와 힘을 기를 수 있다.

 먼저 나를 보고, 그다음 주변을 보고 더 나아가 자신이 속한 사회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질 때 이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 세 가지 눈이 있는 사람의 두 발은 현실을 단단하게 딛고, 그의 머리와 가슴은 이상을 향해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인간관계란 좋은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파트너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경남도를 비롯한 각 자치단체들도 그저 쉽고 좋은 파트너를 ‘선택’하려고만 하지 말고 좋은 파트너가 ‘되기’ 위한 노력들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규정과 법령에 벗어난 일들은 할 수 없겠지만 규정에만 너무 얽매이는 전근대적인 사고만 가지고는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그런 무사안일한 태도로 피해를 겪는 사람들은 주민들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저마다의 기대치는 있다. 기대치란 상대방의 능력과 범위를 헤아리지 못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가 있으니 자기만의 기대치에 가두지 말고 폭넓은 사고를 해야 한다.

 장소이든, 사람이든, 환경이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모든 현상에는 기준이 존재한다.

 그래서 ‘기대치’에 가두지 말고 ‘기준치’에 충실해야 한다.

 기대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기대치 이상이면 좋은 것이고 기대치 이하면 좋지 않게 폄하해 버린다.

 얼마나 이기적인 모순인가? 기대치의 이상도 이하도 본의의 기준으로 정하지 마라. 그것은 객관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환경이든 지금부터라도 있는 그대로만을 보려 노력하자.

 그것이 비윤리적이거나 비도덕이 아니라면, 또 사회적인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있는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며 살자.

 산은 산인 것이고 물은 물인 것이다. 그리고 꽃은 꽃인 것이다.

 조금만 천천히 생각하고 내 능력으론 벅찰 때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포기가 항상 비겁한 것은 아니다. 부여잡은 목표가 벅차거든 자신 있게 줄을 놓자. 대신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날개를 펼치면 된다.

 잘 모르면서 만용을 부리다간 서로에게 상처와 피해만 줄 뿐임을 명심하자.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이 있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다’는 뜻이다.

 서로 성장한다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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