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논단] 우리가 추억하던 그 시절 선생님의 힘은 어디로 갔을까?

  • 입력 2023.06.20 15:04
  • 수정 2023.06.20 2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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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이현수 논설위원
본지 이현수 논설위원

 바람이 흔드는 밤꽃향이 비좁은 산골을 꽉꽉 채워가던 유년 시절의 그 유월이다. 퇴직하신 아버지는 고향마을 야트막한 야산에 밤나무를 심으셨고 밤꽃향도 몇 해 맡지 못하시고 황망하게 떠나셨다.

 지난겨울 아버지가 심어놓은 밤나무를 작은형은 인부를 사서 몇 그루만 남겨두고 아버지의 업적을 치부책에서 지우듯 톱질해버렸다. 간신히 살아남은 몇 그루는 삼십여 년이나 지난 고목이지만 잘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인지 아직은 건재하다는 시위인지 뿜어내는 밤꽃향 만큼은 여전히 스무 살의 청춘이다.

 유월 진한 밤꽃향을 따라 젊은 날의 아버지가 걸어 나오시는 듯한 착각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철없던 시절 저지른 불효로 때늦은 후회를 해보는 나이 든 아들놈의 초점을 흔들었다는 것이라 여기면 좋겠다.

 산골이라 그랬는지 또래들이 다니던 그 시절의 학교생활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하고 열악했다. 하지만 현재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이나 교권침해에 대한 심각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친구끼리의 다툼은 의례 선생님의 중재로 끝나기가 일쑤였다.

 지금도 시골 초등학교 친구들 모임을 가져보면 가난했지만 행복했고 꿈이 있었으며,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도 있었다는 회고담이 오가는 것을 보면 우리 세대가 가진 가난의 기억보다는 친구들끼리 서로 좋았던 행복한 기억만 남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그리 오래된 세월도 아닌 것 같지만 세상이 변해서인지 학교생활의 심각성이 과히 상상을 초월하는 시대를 맞은 게 아닌가 싶은 걱정이 앞선다. 학교폭력이란 단어가 언제부터 뉴스를 타고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지는 모르겠으나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지닌 무게가 예전의 그 시절과는 다른 느낌을 들게 한 순간부터 학교폭력에 대한 해결 방법이 꼬여 들어간 게 아닌가도 싶다.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 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해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 전부를 학교폭력으로 규정한다면 이 용어들이 교육 현장에서 발생할 만한 단어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급기야 학교폭력 피해자 지원법인 ‘정순신 방지법’이 지난 12일 국회 교육위 문턱을 넘었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 보호시설을 국가 차원에서 운영하고, 교육감은 학교폭력 피해 통합지원 전문기관을 설치·운영하도록 한 법안이다. 또 학교장은 피해 학생 측이 원하면 가해 학생의 학급을 바꾸거나 출석을 정지시킬 수 있고, 사이버 폭력도 학교폭력에 포함하게 했다.

 최근 우리 지역에서도 학교폭력에 대한 사후 조치가 적절치 않아 학부모들의 우려를 사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창원 의창구 북면 소재 모 초등학교에서 체육대회 시간에 일어난 학교폭력에 대해 학교 측의 사후 조치를 두고 피해 학생의 부모 측에서 심각성을 제기하자 늦게나마 가해 학생 측 부모의 사과로 수습은 돼가는 모양새지만 진주지역 모 초등학교에서도 같은 반 학생이 교실에서 연필로 찌르거나 필통을 가위로 자르는 등의 폭력 행위를 했으나 부실한 학교의 대응이 도마 위에 올라있는 상태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은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조치 기록이 졸업 이후에도 최대 4년간 보존된다. 학생부에 기록된 조치사항은 대입 정시전형에도 반영되며, 이 기록을 삭제하려면 반드시 피해 학생의 동의를 받아야 함에도 아직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학생들과 학교 관계자들이 있는 것 같아 교육을 통한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무엇보다 교권에 대한 힘이 없는 상태에서 학폭에 대한 지도나 중재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지도 모른다. 중요하지 않은 인권은 없다. 학생 인권에 앞서 교사 인권에 대한 힘이 회복돼야만 예전 우리가 추억하던 선생님의 힘만으로도 중재와 예방에 대한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밤꽃향이 짙은 유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가난했지만 친구들과는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던 우리 세대 모든 부모님의 말씀이 진리였음을 깨닫는다. 공부에 앞서 인성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던 시대를 기대하기에는 철없는 바람일까 싶은 허한 생각도 든다. 그 시절엔 특별한 법이 없었는데도 우리가 왜 행복했는지를 복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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