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욱의 세상만사] 이 시대는 경청과 소통의 리더를 원한다.

  • 입력 2023.06.29 10:51
  • 기자명 /노종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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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욱  편집국장
노종욱 편집국장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삼성에 입사해 처음 출근하는 아들 이건희에게 앞으로 인생 지표로 삼길 바라는 마음으로 휘호를 써줬는데, 그것이 바로 ‘경청(傾聽)’이라는 두 글자였다고 한다.

 아들 이건희는 ‘시대의 지도자는 어떤 마음가짐일까? 그들의 지도력은 어떤 상황에서 발휘되는 것일까?’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세계 일류 기업으로 삼성을 이끌었다고 한다.

 리더라고 모두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리더가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고 지도력을 발휘하는 그 사람이 곧 리더이다.

 뛰어난 리더는 단지 뛰어난 재능만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택동이 죽을 때까지 머리맡에 두며 애독했던 ‘용재수필(容齋隨筆)’을 쓴 송나라의 재상 홍매(洪邁)는 “사람을 제대로 아는 것이 군주의 도(道)이며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신하의 도”라고 했다.

 즉 “치자(治者)의 역할은 사람을 등용한 데서 시작해 배치하는 데서 끝난다”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능력은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있는 역량이 아니었기에 인재 등용의 능력은 천하 패권의 승패와도 직결되는 리더의 중요한 역량이라 할 수 있다.

 리더는 따르는 자들에게 군림하려고 하면 안 된다. 따르는 자들을 위해 최선으로 그들의 안위에 대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리더는 따르는 자들에게 희망과 비전으로 최선의 노력을 하게끔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1세기 기업이 더욱 주목해야 할 아젠다로 ‘소통’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때의 소통은 단순한 의사 전달이 아니라 존중과 이해를 기반으로 한 상호작용이어야 한다.

 중국의 철학자 장자(莊子)는 소통의 과정을 3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첫 번째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다는 몽매한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 즉 상대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상대를 나의 관점에서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르는 새가 아무리 좋고 귀하다 해도 내가 받는 진수성찬의 상을 줘서는 안 된다.

 새에게는 새에게 맞는 모이가 따로 있음을 알고 이를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 번째는 이를 통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됐다는 호접몽(胡蝶夢)의 예(例)에서처럼 현실과 꿈을 오갔듯 자아와 피아(彼我)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면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최근 소통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은 삼성경제연구소만이 아니다.

 영국의 경영학자 웰더는 “경영자들은 근무 시간의 70%를 소통을 위해 써야 하며, 기업 문제의 70%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까지 했다.

 한 출판사에서 출간한 ‘경청’이라는 책 제목에는 ‘마음을 얻는 지혜’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생각해 보면 백 마디 입에 발린 말보다 말이 없더라도 마음을 열고 귀 기울여 주는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말 잘하는 비법을 배울 게 아니라 우선 말을 잘 들어주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인구 100만의 도시 창원특례시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씁쓸하기만 하다. 취임 이후 계속되는 단체장의 송사 그리고 몇몇 직원들의 공직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탈 행위 등 오늘의 100만 도시 창원을 살아가기에는 너무 허탈한 소식들로만 가득하다.

 지난해 6월 우리는 자치단체장과 지방 의회 기초의원을 우리의 대변자로 그 역할을 맡기기 위해 지역의 리더로 세웠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조차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리더로서 해야 할 역할뿐만 아니라 소통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원활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또한 지역민들의 대변인 역할은 고사하고 지역민들에 대한 불안과 불신감만 조성하니 이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역 경제 회복은 외면한 채, 입신양명(立身揚名)에만 치우치고 있지는 않은지 심히 걱정스러운 맘 그지없다.

 절절한 마음으로 호소한다.

 100만 창원의 리더라고 자각한다면 지역의 소리를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까지 세심하게 배려하고 ‘소통’하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주민들의 섬김인 것이다.

 창원시의 지방 언론 홀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정 언론만 지정해서 소통하겠다는 전 근대적인 발상은 도대체 어떤 의도로 해석해야 되는지 또한 그러한 행태가 홍남표 시정의 지방 언론을 대하는 언론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라도 구시대적이고 편협한 사고에 벗어나서, 동북아 중심도시로서의 힘찬 도약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믿고 지지한 지역민들의 소리를 ‘경청’해서 ‘소통’을 우선하며, 상호 간의 ‘교류’를 통해서 모두가 감동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길 간절히 원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라 여겨진다.

 그리할 때 ‘소통’이 ‘감동’이 되고, 그 감동이 넘쳐나는 창원이야말로 우리가 꿈꾸고 모두에게 행복 주는 ‘동북아 중심도시 창원특례시’의 모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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