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논단] 어린 학생들에게 시 한 줄 읽을 기회를 부여하지 못하는 사회를 누가 만들었을까?

  • 입력 2023.07.18 16:06
  • 수정 2023.07.18 19:38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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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이현수 논설위원
본지 이현수 논설위원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한 잔의 술과 버지니아울프의 생을 논하던 밤이 70여 년 전 박인환 시인에게만 필요했을까? 누군가에게는 윤동주나 모윤숙이 더 필요했던 밤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인문학이 아닌가도 싶다.

 80년대 초 부산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일꾼도서원이라는 책방 회원으로 가입해 이념 서적을 읽으며 밤을 새운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가끔 대상이 누군지에 상관없이 뜨거운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와 터놓고 이야기해 보고 싶은 사람을 찾곤 한다.

 어쩌면 박인환, 윤동주, 모윤숙 이분들이 그 시절 우리가 찾던 대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옥같은 그들의 작품이 딱히 대화 상대 없고 즐길 것 없던 시대에는 좋은 도반이 됐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도 유구히 기억되고 회자되는 전설적인 문학인과 그들이 남긴 글들은 그만큼 많은 고민의 밤을 견뎌낸 보상이고 가치라는 생각에 시대를 넘어 젊은 청춘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하지만 세월 흐른 지금은 볼 것도 많고 놀 것도 많은 시절이라 젊은 청춘들이 시국을 논하고, 시를 이야기하고, 문학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각종 SNS로 얼마든지 자신의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요즘 젊은층이 마약에 쉽게 노출될 위험성에 빠져있는 것도 SNS가 한몫하고 있는 게 아닌가도 싶다.

 우리 지역에서도 지난주 모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마약을 했다는 부모의 신고로 학교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다행히 그 학생이 복용했다는 약은 소화제의 일종이었고 B정신병원에서 마약 반응 검사 결과 음성으로 나왔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시 국과수에 의뢰한 상태라고 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우리는 지난봄 서울의 학원가에서 음료나 우유 시음 행사를 가장해 학생들에게 마약 성분이 든 음료를 나눠 마시게 했던 사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좋아지는 약, 공부 잘하는 약이라고 속여 한참 공부에 스트레스받고 있을 청소년에게까지 마약이 손 뻗치고 있다는 사실은 과히 충격이었다.

 다행히 우리 지역의 경우 학교 측과 경남교육청의 발 빠른 대응으로 학생이 안전하게 치료받고 검사받을 수 있도록 조치한 것에 대해 취재를 했던 필자로서는 무척이나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열한 경쟁의식이 어린 학생들에게 시 한 줄 읽을 기회를 부여하지 못하는 사회를 누가 만들었을까?

 젊은 시절 한때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비관하며, 자신의 목소리에 의해 세상이 확 바뀌기를 갈망하던 패기 넘치던 청춘인 때가 있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현재의 삶이 사뭇 부끄러워지는 나이대를 사는 우리 아니던가.

 더러는 한때나마 혁명가였고 왕년의 투사였던 삶을 발판으로 누군가의 등에 업혀 권력으로 향하는 길로 일찌감치 들어서서 현재도 그러한 삶을 지속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자원이 돼 있다. 그런 우리가 자유, 민주, 민중, 민주주의만 부르짖으며 좋은 세상으로 바꾸겠다고 해놓고 지금의 세상을 아이들에게 너무 각박한 세상으로 물려준 역사의 죄인은 아닌지 묻고 싶어진다.

 교육청 관계자로부터 이번 사례를 경험해 보니 약물 오남용에 따른 치료 병원이나 치료비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다. 노인복지 예산은 풍부할지 몰라도 어린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아직도 관심받지 못하는 구석이 많음을 느낀다. 우리가 꿈꾸던 세상은 아직도 멀었음을 인지해야 할 때를 지나고 있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인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문학 책 한 줄 읽을 시간 없는 아이들로 만든 것도 우리다. 함께 밤을 새워줄 도반들의 진지한 이야기가 더 필요할지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우리가 그리고 꿈꿨던 목마와 숙녀를 떠올리게 하고,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암송하는 정서를 제공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는 죄인들이 아닌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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